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7)
상태바
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7)
  • 승인 2008.10.24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27. 벌레 먹은 서정과 잔인한 순정

沙漠은 강수량보다 蒸發量이 더 많은 곳이다. 그러나 사막에도 사람이 살고 생명이 산다. 씨 뿌리는 계절이 오면 높은 산에서 氷河水가 녹아 봄을 만들어 준다.
아무 생명체도 없는 춥고 눈보라치며 거센 바람만 부는 곳, 쩡쩡거리며 깨지는 얼음과 눈사태로 高山은 늘 殺氣로 가득하다. 그러나 계절이 돌아오면 殺氣가 녹아서 贖罪하듯 大地를 적신다.
그래서 가장 뜨거운 7, 8월에 가장 많은 방하가 녹아내려 홍수로 대지를 뒤덮기도 한다. 티베트의 江들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엉성하지만 메마른 땅을 적셔 생명을 살리는 빈틈없는 신의 섭리에 감동하게 된다.

感性도 Bike를 따라서 내리막길을 달린다. 팡라(Pang La; 5050m)에서 내려가는 길은 차도가 있지만 평평한 경사라서 차들은 가끔 길을 무시하고 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길은 현실적이어서 ‘大道無門(김영삼)’, ‘길 없는 길(최인호)’, ‘道可道 非常道(老子)’를 인정하지 않는다. 길은 수렴하고 멀리 통하게 한다.
또 하나 길은 낮은 곳으로 임하는 물길로 계곡으로 계속(繼俗) 이어지면서 깊은 곳(deep)으로 흘러 속(俗)을 만난다. 건조한 스텝이나 사막에서는 물이 있는 곳을 구심점으로 생명이 모인다.

인류의 4대 문명발상지도 낮은 곳으로 임하는 강과 함께 한다. 그래서 문명은 속(俗=亻+谷)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깊은 속에는 물이 있다. 사람도 깊은 속의 정자와 난자라는 물이 만나서 시작된 것이다. 河圖 洛書의 一六水인 것이다.
이런 험산준령에 난 길은 대부분 계곡과 함께 간다. 평평한 경지는 수확이 끝나 텅 비어 있고 얼마 남지 않은 초원에는 야크와 양과 말과 조랑말들이 三三五五 풀을 뜯으면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직사광선이 습기를 제거한 바람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메마르게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장 귀하고 힘든 색이 초록이다.

전(全)대통령을 단군(檀君) 이래 최고의 聖君이라고 극찬하며 龍飛御天歌에 부른 시인이 있었다.
그런 未堂을 사람들은 末堂으로 불렀다. 親日에 이어 親軍府 행각은 자기 시의 抒情을 잘라버린 것이다(抒情, 誅; 벨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 후략 …………………
<푸르른 날, 서정주>

벌레 먹은 사과처럼 여기 소개한 詩의 서정도 맛이 있다. 시대의 고민이 전혀 없어 보이는 오욕으로 얼룩진 이 詩人의 행위는 ‘잔인한 순정’ 때문에 역사를 망친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병자호란 때 淸나라가 쳐들어오자 朝鮮은 오합지졸이 되어 남한산성안에 幽閉되어 버렸다.

온 나라가 굶어죽고, 불태워지며, 가정을 지키던 수많은 여인들이 淸나라 병사들에게 능욕을 당하든 말든, 明나라에 대한 君臣의 禮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三學士들의 殉愛譜는 남자의 절개(節槪)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서정주의 ‘벌레 먹은 서정’과 삼학사의 ‘殘忍(?)한 순정’은 극단적인 대비가 된다.

4.19때 이승만의 동상을 무너뜨린 것처럼, 구소련이 해체될 때 여기 저기 레닌의 동상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은 분노와 폭력은 못 마땅하다. 역사의 가르침은 반면교사가 훨씬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총독부의 철거는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을 짓밟은 와신상담의 상징을 없애버린 것이다.

1997년 브레드피트 주연의 장자크아노 감독의 <티벳에서 7년>은 하인리히 하러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전에는 주로 산악인들 사이에서 많이 읽혀졌다.
하러는 오스트리아 그라쯔에서 스포츠와 지리학을 전공하고 스키강사와 산악가이드를 했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 대표로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영예를 누렸다.

독일출신 헤크마이르와 푀르크, 오스트리아의 프리츠와 하러는 당시 등반가들의 최대 숙제였던 아이거 북벽 초등에 성공했다. 그는 아이젠(빙벽용 쇠발톱)도 없었지만 두 사람(헤크마이르와 푀르크)의 뛰어난 등반력 덕분에 운 좋게 성공한다.
그 여세를 몰아 독일 낭가파르트 원정대원으로 뽑혀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등반은 실패로 돌아가고 독일이 전쟁에 지면서 전쟁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1944년 5번의 시도 끝에 수용소 탈출에 성공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동쪽 티베트로 향한다.

그는 티베트 라사까지 2000km가 넘는 길을 21개월 동안 걸어갔다. 1946년부터 라사에서 어린 ‘달라이라마’의 조언자이자 교사로 인연을 맺는다. 1953년에는 그의 경험을 기록한 책 <티벳에서 7년>을 출간했다.
영화 <티벳에서 7년>에 만다라(mandala; 曼茶羅)가 나온다. 만다라는 원과 사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 안팎에 종교적 신성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삼라만상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라마승들이 종교적 염원을 담아 색색의 돌가루를 뿌려서 그린 만다라가 인민해방군의 군화 발에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은 티베트의 예고된 운명 같았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