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3)
상태바
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3)
  • 승인 2008.08.29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23. 차고 치고 당긴다

알 수 없고 막연하지만 강한 끌림이 느껴지는 만남을 경험할 때면 화엄경에서 말한 Indra網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巨大하고도 極微한 그물로 연결된 생명체이다. 티베탄들을 보면 인디언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서 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부심과 명예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패배한 勇士들은 부러진 칼을 쥐고 한탄스런 생을 마감했다. 勇士들의 후예는 인디언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안에서 친절한 백인(?)들이 제공한 술과 담배와 마약에 쩔어 더 이상 자부심과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온전한 양심을 갖고 인디언의 滅亡史를 보았다면 인간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사실에 실망과 수치와 분노로 몸을 떨 것이다. 감히 6백만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비이성과 폭력에 돌을 던지지 못할 것이다. 팔레스타인人들에게 가한 이스라엘 유태인들의 야만과 잔인함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
비이성과 탐욕, 야만과 폭력으로 무장한 신대륙 진출 유럽인들은 차츰 아프리카에서 사냥해온 노예들을 대려와 奴役을 시켰다. 이들이 양 대륙에 가한 일은 존엄한 존재라는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인 신성한 휴머니즘에 붉은 피를 바르고 기만적인 상투(常套)의 껍데기를 벗겨버린 광란의 카니발리즘이었다.

도대체 종교적 박해를 피해 바이블 하나 품고 千辛萬苦 신대륙에 건너간 거룩한 믿음과 아름다운 양심을 가진 순수하고 맑은 淸敎徒(Puritan)들이 이후에 보인 잘못된 신념과 눈 먼 열정으로 신대륙에 가한 폭력과 야만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因果應報에 대한 말씀을 ‘(유럽대륙에서) 당한 대로 (신대륙에) 가하리라’는 식으로 바꿔버린 것 같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報怨以德이 報德以怨으로 되어 버렸다.

종교와 무지가 만났을 때 유전자변이에 의해 알 수 없는 변종바이러스 같은 것이 생긴다. 이 바이러스는 무서운 신념과 괴력을 지닌 잔인함과 폭력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자주 보아왔다.
마오쩌뚱이 長征을 할 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특유의 카리스마에 인민들이 환호했고 천운이 뒤따라 대륙에서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도된 이데올로기로 온갖 사회주의 실험과 정치공작(대약진운동, 문화혁명 등)으로 수천만 인민을 죽음의 나락으로 내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종교, 이데올로기, 예술, 남녀 간의 사랑 등은 沒入되면 超越的인 힘을 발휘한다. 선의 의지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초월할 때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지금까지 미미하게 남은 기록 가운데 시애틀 추장의 편지(Chief Seattle‘s Letter)는 인디언들이 얼마나 자부심이 강하고 명예를 존중하며 용감한 이들인지 알게 한다. 불어오는 바람결, 반짝이는 물결 등 모든 것에 신성함과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아름다운 Animism에 감동하게 된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모든 사물들은 우리들의 몸을 연결하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은 인생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 아니라, 그 거미줄의 실 한 가닥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이 그 거미줄에 무엇을 하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시애틀추장의 편지’에서 >

시간이 가면서 마을의 공회당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이고 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차고, 치고, 당긴다’는 매우 단·무·지한 몸살림 교정법을 썼다. 이 단·무·지는 ‘단순·무식·지독’, ‘단순·무식·지저분’이 아닌 ‘단순·무식·지존’이라는 이니셜이다. 이것은 필자에게 동의보감 또는 기존의 한의학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공포를 안겨준 적극적이고 실사구시한 치료법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 원정에서 모든 단·무·지를 다 맛보았다.

진료를 마치면 언제나 아쉬‘움’이란 새싹의 움이 싹튼다. 이런 단순한 의료봉사보다는 현지에 맞는 위생시설, 단순하고 효과적인 건강법과 운동법, 간단한 질환을 자가 치료하는 방법을 “현지어로 매뉴얼화” 하여 인쇄해 나눠주고 몇 번 반복 교육을 시키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홍일점이지만 성염색체 DNA가 의심스러운 이경주 대원은 가지고 간 선물인 모자와 장갑과 목도리 그리고 공책과 연필 등을 나누어 주면서 모처럼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 동안 원정 갈 때마다 많은 것을 지원해 준 古友 임시만(미성 Cooperation 대표)의 덕분이다. 아이들이 벌써 쓰고 끼고 입고 걸고 제비처럼 즐거워한다. 오버차지로 끔찍한 헌옷들도 체격을 보아서 나눠주었다.

원주민들 봉사를 하고 쵸모랑마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9시 반이다. 마지막 식사 손님인 우리는 주정(Spirit)이 높은 50도 대륙 술을 한 병 시켜 고원의 客愁로 울체된 심신을 풀어내었다. 4천m가 넘는 이곳에도 가을밤은 깊어가고 있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