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볼티모어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술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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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볼티모어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술대회 참관기
  • 승인 2008.08.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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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구동향 몸으로 체험한 오프라인의 장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History of Science in East Asia, ICHSEA)는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회(The International Society of the History of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SHEASTM)가 3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학술대회다.
원래는 중국과학사학회였다가 점차 한국 일본 등의 연구자들과 연구 분야를 포괄하면서 1990년부터는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회가 되었다. 이를 기념하듯 1993년 대회는 일본에서 1996년 대회는 서울에서 열렸다.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술대회는 말 그대로 동아시아의 과학 즉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과 의학[medicine]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 학회의 변천과정도 이를 말해주지만 원래 중국의 과학기술 및 의학 관련 자료를 연구하는 서양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서양에서 중국의 고대과학에 관심을 갖고 시작한 모임이기 때문에 외모는 전형적인 백인이라고 해도 성향도 친중국일 뿐더러 중국어와 한자를 표현하고 이해하는데 아주 능통하다.

특히 이 학회의 원로학자들은 중국식이름을 갖는 경우도 많다. 현 학회장인 크리스토퍼 쿨렌도 ‘古克禮’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차기 학회장으로 선출된 폴 운슐트는 ‘文樹德’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양학자들과 함께 중국계 미국인과 중국에서 온 학자들이 이 학회의 가장 큰 주류인 중국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김영식 교수가 1996년 서울에서 이 대회가 열렸을 때 학회장을 했었고 한국과학기술사분야의 개척자이신 전상운교수와 송상용 교수가 이 학회의 원로에 해당한다.

올 학술대회는 12번째로 미국의 볼티모어(Baltimore)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개최되었다. 필자가 이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된 계기는 지난 지난 겨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의학사교실 교수 말타 한슨(Marta Hanson)을 만났을 때이다. 마침 올해 볼티모어에서 열리는 학회의 전체행사를 주관하고 있던 말타 교수가 필자에게 한국한의학에 대한 독립된 패널의 구성을 제안했고 한국의사학회 임원들과 상의한 끝에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학(Korean Medicine In East Asia)”이라는 주제로 패널을 구성하게 되었다.

패널에 참여한 분들은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안상우 학술정보부 부장과 민족의학신문사의 강연석 사무총장이 필자와 함께 패널로 참여하였다. 안상우 부장은 의학문헌의 저술과 출간을 통해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이 어떻게 의료정보를 교환해갔는지에 대해 발표하였고 강연석 총장은 ‘향약’ 즉 국산약재의 활용과 중국의학과의 교류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필자는 조선통신사의 파견과정에서 있었던 한·일 간의 의료정보의 교환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비록 필자의 이름으로 개설된 패널이기는 하지만 그간 한국의사학회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한국한의학의 정체성’이란 화두에 대해,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첫 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참여한 패널과는 별도로 KAIST의 신동원 교수가 주관한 “중국의학의 한국화의 문제(Koreanizing Chinese Medicine? : Problems and Possibilities in Representing Korean Medicine in a Global Setting)”에 대한 패널발표가 있었다. 신동원 교수 외에 경희대학교 김남일 교수, 연세대학교 여인석 교수, 하버드대학교 서소영 박사가 패널로 참가하였고 동양의학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원로교수 샤롯데 퍼쓰(Charlotte Furth)가 토론자로 참가한 자못 중량감 있는 패널회의였다.

신동원, 여인석, 김남일은 한의학 교양 스테디셀러인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의 공동저자이며 한국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중진학자들이며 서소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과학철학사 협동과정 출신으로 최근 괄목할 만한 연구업적으로 하버드대에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린 신진학자다.
여기에 토론자의 네임밸류까지 더해 이 학술대회에서 다소 비주류였던 한국관련 패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청중들이 참가하여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7월14일 월요일부터 7월18일 금요일까지 미국 국립보건원(NIH) 도서관과 워싱턴DC의 국회도서관의 Fieldtrip을 포함하여 오전8시30부터 오후 6시까지 빡빡하게 진행된 학술대회였다. 회의장도 주회의장이었던 Glass Pavilion을 포함해서 7개의 회의장에서 총 43개의 패널회의가 열렸다.
꼬박 5일 동안 200여명의 참가자들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연구업적을 발표하고 다른 연구자들과 쟁점에 대해 논의하며 또 청중의 한사람으로서 다른 패널발표에 참여하면서 각자가 국제적 연구동향을 몸으로 체험하는 진지한 오프라인의 장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하는 이슈이겠지만, 이런 동아시아관련 국제학회에 참여하다보면 한중일 삼국에서의 한국의 위치와 위상에 대해서 한번쯤은 고민하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 학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약한 듯 보였는데, 한국과학사연구의 원로학자이신 송상영 교수님께서는 이번 학회를 상당히 고무적인 대회로 평가하셨다. 우리가 다른 동남아시아국가들과 같은 위상에서 벗어나서 독립된 패널을 구성할만한 인적 연구적 수준이 향상되었고, 또 학회관계자들 및 패널발표자들이 중국, 일본과 함께 한국을 꼭 끼워 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장족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외에서 열리는 이 학술대회에 한국연구자들이 5명 내외였는데 이번 학회에서는 국외연구자를 포함해 한국연구자들이 30명가량 참여했다. 한국의사학회에서도 맹웅재 학회장님과 필자를 포함하여 7명이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하였다. 이번 학회의 고정참여자가 200명 내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포션인 셈이다.
2011년 중국 안휘성 허베이(合肥)에서 열릴 다음 대회에도 대거참여가 예상되기 때문에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科學史) 연구영역에서 한국연구자들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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