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2)
상태바
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2)
  • 승인 2008.08.18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22. 영원을 건너는 다리 - 만트라

마른 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바람이 불어와 갈 길을 잊었나. 아무도 없는 길을 너만 외로이 가야만 하나~~!
낙옆이 구르는 가을날 오후 그 동안 나서지 못했던 의료봉사를 뉴팅그리에서 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오지에 와서 현지 원주민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의식이 의료봉사일 것이다. 사소한 만남이지만 얼마나 큰 인연의 실타래로 연결된 것인지 모른다. 사랑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듯이 인연도 아무렇게나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미리 잘 준비된 계획적인 의료봉사가 아니다. 게릴라처럼 파르티잔처럼 그냥 무작정 원주민 마을로 차를 타고 들어가고 있다. 몇 번을 물어 마을 촌장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먼지가 덕지덕지한 흙바닥에 쓰레기들, 탁자 두세 개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는 교실 같은 곳에 사람들을 모았다.
해발 4천m가 넘고 일교차가 심해 원주민들은 무척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을 때 평생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냄새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옷을 벗는 것만 거의 한나절은 걸릴 것 같다. 단순하게 팔꿈치나 무릎까지 옷을 올리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이것을 의외의 복병(服兵?)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정도 청결이 유지된 상태에서 위생관념도 있지 이런 상태에서는 위생이란 말자체가 사치에 불과했다. 자연스러운 것이 곧 지저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을 정리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류시화저)라는 말처럼 이들에게 ‘너는 내가 아니듯이 나는 네가 아니다’는 서로 다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그들에게 同情과 哀憐으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눈높이가 같은 서로 다른 문화와 만남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此岸의 삶’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彼岸의 세계를 꿈꾼다.

裟婆 세상에 살면서 피안의 세계를 갈망하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彼岸의 범어 어원은 파라미타(Paramita;波羅密多)이다. 파라밀다는 파라마(Parama)에서 온 말로 ‘최고’를 뜻한다. 인도유러피안語로 primus와 비슷하다. 피안의 세계는 진리를 깨닫고 도달한 최고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한다. 노동당 당사가 폐허가 되어 남아 있는 비무장지대 민통선 안에는 도피안사(到彼岸寺)라는 절이 있다. 티베트인들은 피안의 이상적인 세계에 도달하고픈 염원을 갖고 산다.

그 그리움과 갈망만큼 Mantra(眞言, 呪文)는 계속된다. 가장 대중적인 만트라가 ‘옴마니반메훔’이고, 영어는 ‘Om mani padme hum’으로 쓰며, 중국어로는 “암마니팔미우(唵麻呢 叭迷吘)”, “암마니패미우(唵嘛呢貝美吘)”라고 적는다. 이 말은 음역이므로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고 손으로는 옴마니반메훔이 적힌 법륜(法輪;Mani wheel)을 돌린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면 일렬로 된 여러 개의 법륜이 있어서 일상적으로 그것을 돌리면서 지나간다. 라다크나 네팔 티베트의 거의 모든 곰파(Gompa;寺院)나 커다란 스튜파(Stupa;塔) 옆에는 ‘길손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니휠이 있다. 간혹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수력으로 법륜을 돌리게 된 곳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회자(膾炙)되는 아멘, 할렐루야, 샬롬, 인샬라, 왓살렘 왈레이쿰, 나무아미타불 등은 모두 종교적인 만트라이다. 티베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진언은 옴마니반메훔으로 요람(此岸)에서 무덤(彼岸)까지 가는 길동무이고 내세로 건너가는 다리역할을 한다.

옴마니반메훔은 梵語로 直譯하면 “연꽃 속에 보석이여”라는 말이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뻘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그 아름다운 승화 안에 ‘보석’은 무엇일까? 부처님의 불법, 자비를 상징한다. 그러나 종교적 분쟁을 피하는 가장 적절한 용어로 眞理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연꽃은 지저분한 뻘에서 자양분을 받았지만 꽃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아래로부터 ‘집중과 수직적 상승’의 의미가 있다.

보석은 광채를 발하며 ‘상하사방’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진리가 시방(十方)으로 빛을 발하며 퍼진다는 말이다. 높은 곳에서 ‘발산과 하강’하는 개념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만트라를 이해했다.

이렇게 티베트인들은 진흙 뻘 같은 남루한 此岸의 삶의 뿌리를 만트라를 외우면서 彼岸의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시키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상향을 꿈꾸는 이들의 현실적인 삶은 고달프다. 그러나 그런 꿈마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꿈이 있어서 각박한 삶도 아름답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