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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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21)
  • 승인 2008.07.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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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잿빛하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Tibet를 세계의 지붕이라고 한다. 바람은 몹시 불어 구름은 새털처럼 흩날려가고 세상은 온통 잿빛 하늘로 덥혀 있다. MTB는 그 음산한 공간을 뚫고 달리고 있다.
한 때 그 을씨년스럽고 삭막하며 메마르고 거친 고원이 도대체 아름다움과 전율로 와 닿는 야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잿빛 하늘의 우울, 잠시도 잠들지 않는 바람의 노래, 희박한 공기 때문에 깊게 마셔지는 서늘한 한숨, 틈을 찾아 무법자처럼 쳐 들어오는 한기가 어찌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너무 절박한 환경은 음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우수와 감상에 젖을 시간조차 없다. 그러나 삭막한 고원에도 따뜻한 계절이 와서 물이 대지를 적시면 키 작은 초목들과 꽃들은 너무 오래 기다린 목마름처럼 간절하게 피어난다. 꽃이 필 때면 이곳은 잠시 신들의 낙원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은 또한 신에 대한 발칙한 도발이어서 오래 가지 않는다. 고개를 들면 가슴에 안기는 淸澄한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를 내려다볼 때마다 매 순간 만나는 풀들은 다정했고 꽃들은 어여뻤다. 척박한 땅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은 그립고 반갑다. 고원이나 사막에서는 사람 사이 人間뿐 아니라, 서로 다른 生命間에도 友情 같은 것이 느껴진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모든 것이 귀하고 단순해진다. “天網恢恢 疎而不漏〈老子〉”(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 트여있으나 새지 않는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그물을 버티는 벼리(大綱)는 굵고 단순해지고,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그물은 가늘고 섬세해진다.
이 말은 博과 精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늘은 博(넓음)이고 땅은 精(정밀함)이다. 地網密密 塞而不博(땅의 그물은 촘촘하고 촘촘해 막혀있으니 넓지 않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늘 이상을 쳐다보고 산다. 그러나 땅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하늘도 쳐다 볼 수 없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작고 사소한 한걸음 한걸음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MTB로 이런 거대한 땅을 횡단할 때는 博과 精이 조화로워야 한다.
가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사라지면서 귀해지고, 귀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아쉬움이 간절할 때 酒術로 채워지고 藝術로 표현되기도 한다. 고달픈 원정을 가서 경험한 크고 대단한 일보다 이런 ‘사사롭고 소소한’ ‘사소’함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온다.

황량한 고원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그 고독한 길과 만나는 꿈을 꾼다. 이런 그리움이 일 년을 기다리게 하는 양식이 된다. 일 년을 기다려 다시 굳세게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꿈을 꾸게 된다.
티베트 고원은 우정공로를 따라서 넓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곳은 물이 없고 가까운 산은 메말랐다. 그러나 더 높고 더 추우며 더 희박하고 더 삭막한 극단적인 고산에는 얼어붙은 만년설이 있다. 때가 되면 이 눈 녹은 물이 메마르고 건조한 대지에 생명의 젖줄이자 혈관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총을 주는 하늘의 덕과 같다.

고원의 삶은 이 생명의 혈관에 의탁해서 종속되는 것이다. 물이 있는 곳에 보리나 밀을 심어 농사를 짓고 거친 초원에서는 짐승을 키우면서 삶의 터전을 이룰 수 있다.
MTB는 찬바람과 모래 먼지를 부딪히며 달린다. 자전거 안장 뒤에 달린 작은 백에는 스페어 튜브, 펑크수리장비, 체인공구, 육각렌치 등 연장이 들어 있다. 여기에 비상금과 신분증과 명함은 비닐봉지에 넣어둔다. 펌프는 자전거 프레임에 부착되어 있다. 이렇게 해 두면 평상시 챙길 것은 지갑과 휴대폰과 물과 간식만 챙기면 바로 떠날 수 있다.

장거리 라이딩 시 몸은 자유롭게 하고 필요한 짐은 가능하면 자전거에 붙인다. 자전거에 붙은 간식주머니(Bento Box)와 상의 저지의 뒷주머니와 조그만 벨트색에 간식과 지폐와 여분의 보온용 바라크라바만 챙기면 하루 이틀 정도는 갈 수 있다.
나그네여, 그렇게 무소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리고 잿빛 하늘 아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런 고행은 때 묻은 나의 삶에 대한 정화 의식이다. 나의 여린 영혼이 이끄는 육신에 놓는 백신(Vaccine)같은 것이다.

뉴 팅그리까지 가는 길은 전반적으로 내리막이어서 오후 의료 봉사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자전거를 올렸다. 은사시나무의 하얀 나신위에 이파리들은 반짝이듯 떨고 있다. 먼지 날리는 앞마당에는 떨어진 낙옆만 쓸쓸히 발길을 끌고 있는 쵸모랑마 호텔의 가을 오후이다. 그러나 아직 오후 햇살은 충분히 남아 있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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