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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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9)
  • 승인 2008.07.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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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La:고개)~!

멀고 고독한 노정을 끝내고 드디어 고개정상에 도착했다. 바이크 컴퓨터를 보니 라체에서 락파라까지 32km이다. 순수한 고개만 27km나 된다. 지긋지긋하던 苦毒은 어느새 快感이 되어 瞬息間에 散華해 버린다.

‘모든 것은 瞬息間에 지나가고/ 지난 것은 모두 그리워만 진다’는 푸슈킨의 시가 생각난다. 그는 눈부신 미모의 여인 나딸리아의 연기(戀技)에 눈이 멀었지만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결혼에 성공해 잠시 천당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녀와 주위를 ‘킁킁’거리며 배회하는 수컷들 간의 緣分紅 매운 연기(煙氣)는 그에게 오랫동안 괴로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바람기는 시인의 삶을 한 동안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을 지키지 못하고 결투로 자신을 내몰았다. 처제(푸슈킨의 부인;나딸리아)와 戀技를 피운 처형의 남편(단테스)을 처형하기 위해 결투하다 먼저 총에 맞아 삶을 마쳤다. 그의 삶 역시 눈 깜박일 사이, 숨쉴 사이에 지나가버려 더욱 아쉽다. 시인은 죽었지만 그의 명예는 不滅을 얻은 것이다.

고개는 많은 想念을 남기는 곳이다. 고개의 관문에는 만국기 같은 ‘탈쵸’의 작은 깃발들이 걸려있다. 수많은 깃발들은 열렬히 길손에게 손짓하고 환호해 주고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유치환의 시 ‘깃발’의 표현으로는 감히 이 수많은 깃발의 아우성을 감당할 수 없는 것 같다.
고개 위에는 항상 祈願이 있다. 고개 위에 祈願은 지나온 곳과 갈 곳으로, 낮은 데로 임하여 갈 수 있다. 그래서 티베트와 히말라야의 산간 고갯마루에는 늘 탈쵸의 깃발들이 중생을 위해 기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깃발은 감정의 煽動을 일으켜 낸다.

이 만국기 같은 깃발에는 팔리어(Pali語)로 된 티베트 불교 경전의 法語들이 인쇄되어 있다. 그 꽃잎(法語)은 바람결에 휘날려 저 멀리 十方의 四部大衆에게 안길 것이다.
능선은 단순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멀리 아스라이 이어져 있다. 군데군데 하얀 눈의 잔설은 겨울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개 정상에는 승합차, 버스 등을 타고 온 관광객들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가 맨 처음 고개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반겨주는 사람이 티베탄 모녀였다. 그녀들은 정상에 도착한 감동을 음미하고 있는 필자에게 자꾸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모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벤또 박스에 들어있는 마른 건포도 뿐이었다.
‘This is the Summit!’,‘Here is the Top!’이라는 표현보다 카이자르의 ‘Vidi, Veni, Vici(왔소 보았소 이겼소)!’라는 말이 가장 멋져 보인다.

후세 호소가들 중 ‘와서 웃었다(소), 보아서 웃었다(소), 이겨서 웃었다(소)’라고 해석해 소들도 입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산 정상은 아니지만 5220m의 고개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것만으로도 그냥 감동적이다. 이곳의 산소량은 해수면의 50%도 못된다. 그러므로 이론상 해수면에서 1번 호흡했다면 5천m에서는 2번 호흡을 해야 하니 숨쉬기가 상당히 바쁘다.

자전거를 타고 긴 언덕을 오를 때 저속이라 바람 저항을 덜 받으므로 최고 심폐능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소 보행법’을 응용하면 된다. 일반 산행에도 응용할 수 있는 고소 보행법을 소개한다. 엉덩이는 ‘볼록’, 배는 ‘홀쭉’, 가슴은 ‘활짝’, 어깨는 ‘으쓱’하면서 뒷짐을 지고 손등으로 후상 腸骨을 전상방으로 밀어준다. 턱을 들어 뒤로 붙이고 이빨은 가볍게 ‘꽉꽉’ 깨물면서 심호흡을 하면서 걷는다. 이 자세는 우리 옛 사람들이 먼 길을 갈 때 걷는 자세와 아주 흡사하다. 가장 큰 심폐능력을 요하는 마라토너들의 자세를 보고 만든 이 고소보행법은 상당히 효과가 좋다.

바이크를 탈 때는 가슴은 ‘활짝’, 어깨는 ‘으쓱’한 자세로 고개를 쳐들고 가볍고 경쾌한 페달링으로 올라가면 된다. 이 자세는 기관차가 달릴 때처럼 빠르고 큰 심호흡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락파라도 이런 자세로 올라갔다. 흉추가 굽은 정도에 따라 최대 심폐량의 60~90% 밖에 사용하지 못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 먼저 고소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바람이 몹시 찬 정상에서 근 1시간동안 김연수와 서성준 대원을 기다렸다. 사각형 아치의 탈쵸에는 경의를 표하고 행운을 빌어주는 하얀색 긴 천인 ‘카타(Ka-btags)’가 많이 걸려 있다. 깨끗한 카타를 가져다 나중에 온 김연수에 이어 서성준의 목에도 걸어주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다운힐을 시작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듯이 고개가 높으면 내리막도 길다. 완벽한 비포장의 스릴이 넘친다. 질주본능은 Uphill이 아니고 Downhill을 할 때 나온다. 바퀴의 원형과 평면인 지면의 만남, 바퀴에 부딪히는 작은 자갈들이 튀는 전율이 온 몸으로 경쾌하게 전해져 온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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