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상태바
[도서비평]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 승인 2008.06.13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올 5~6월은 유난히 노는 날이 많다는 점을 핑계 삼아 아끼는 후배와 함께 얼마 전 앙코르와트(Angkor Wat) 관광을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중국행이 쓰촨성(四川省) 지진 여파로 취소되는 통에 목적지를 급변경하여 결행한 것이었는데, 아무런 사전공부 없이 떠난 여행치고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식과 날씨가 우선 좋았고, 동일한 패키지 상품을 선택한 팀원들도 죽이 잘 맞았으며, 무엇보다 제 몫까지 더하여 준비에 만전을 기한 후배의 공이 컸습니다. 아! 또 있다. 챙겨간 김용규 님의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한적한 호텔 수영장에서 독파한 후의 감흥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캄보디아 빈민촌 실상과 그대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디 이 책은 저자의 근작 ‘설득의 논리학’을 읽은 후 구입했답니다. 글줄이나 쓰려면 뭐 좀 논리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뭔가 좀 설득력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가 무심코 구독했었는데, 이후 120%의 만족감에 마치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를 검색하듯 지은이의 이전 작품을 쭉 훑어본 뒤 제목에 구미가 당겨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보기 좋은 떡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철학과 문학이 짬뽕된 이 책은 그야말로 산해진미의 진수성찬이었습니다. 해서 굳이 빈곤이 체화된 꾀죄죄한 모습의 여린 아이들이 “기브미원달러(Give me 1 dollar)”를 외치는 곳에서 읽지 않았더라도, 삶에 대한 자세를 재삼 일깨우기엔 충분하고도 남았으리라 여겨집니다.

김용규 님은 그가 주방장을 자처하며 마련한 카페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등 총 13편의 소설과 희곡을 메뉴로 제공합니다.
흔히 ‘고전’이라 일컫는 일류 요리들을 ‘메인 디쉬(main dish)’로 추천하되, 사이사이 음악·미술·영화·시·노래 등을 애피타이저·샐러드·디저트 삼아 내 놓음으로써 감칠맛을 더합니다. 평소 입이 짧은 저로서도 세상 어느 셰프(chef)가 이토록 다양한 맛을 이만큼 솜씨 좋게 미각을 자극하며 버무릴 수 있을까 깜짝 놀랄 지경이었으니,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분들에겐 최고의 맛을 선사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1, 2부로 나뉜 탓에 글은 총 14편의 각기 다른 문학작품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들 유명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유효적절하게 인용하며 풀어놓은 각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풍부하고도 독특한 향취를 자랑합니다. 해당 작품과 저자에 대한 사소한 정보부터 교양이 될 만한 각종 주제 및 그에 내포된 의미까지 다양하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철학적 해석입니다. 작품의 의미와 가치·작가의 숨은 의도 등을 분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철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지 않느냐며, 독자들에게 스스로의 삶에 대한 ‘존재가능성’을 추구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의문 하나! 즐기기에는 좀 늙었고, 욕망이 없다기에는 아직 젊은 사람이 ‘본래적 권태’의 ‘사막’에서 벗어나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