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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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5)
  • 승인 2008.05.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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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라체를 향해 달린다!

시가체 호텔 티베트풍 방에서 하룻밤을 유숙한다. 고원의 얼어붙은 밤공기를 뚫고 달빛이 지상을 두루 적시고 있다. 저녁은 이렇게 저물어 가고 달빛에 적셔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직선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햇볕은 서리 맞은 낮은 곳의 건초들을 말리면서 마른 풀 향기를 풍겨낸다. 낮은 이렇게 낮은 곳으로부터 오고 있다.

高原의 삭막한 자연은 거칠지만 불가사의한 조화 속에 숨죽일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언뜻언뜻 음미하게 한다. 고원을 여행하는 백미는 아무래도 근원적인 감각의 吟味일 것이다.
사람들은 ‘낙엽을 태우며’ 떠나간 이효석을 회상한다. 낙엽 타는 냄새에는 봄과 여름의 화려했던 추억이 묻어있다. 추억은 늙어간다는 고백 같은 것이다. 누구나 남몰래 간직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시가체에는 그런 오래된 추억을 간직한 타쉘훈포 사원이 있다. 17세기에 5대 달라이라마가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 사원의 원장에게 ‘위대한 학자’를 뜻하는 판첸 라마라는 호칭을 수여한 것으로부터 유래가 됐다.
그러나 현재 11대 판첸 라마는 티베트의 어린 還生者가 아닌 중국정부가 擁立한 가짜 판첸 라마와 그의 攝政(Regent)이 타쉘훈포 사원에 머물고 있다.

중국은 이렇게 구석구석 철저한 분열정책을 쓰고 티베트인들에게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불임수술과 낙태수술도 하고 있어 엄밀히 말해서 Genocide(민족학살)라고 평가한다. 현재 라싸의 280만 인구 중 3%의 한족이 전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디카의 메모리는 권기자의 노트북 컴퓨터에 보관하고 배터리는 빵빵하게 충전했다. 寫眞을 撮影하는 것은 ‘영상을 취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찍는다’, ‘박는다’고 표현하고, 영어권에서는 좀더 강하게 ‘저격하다’, ‘쏜다’는 의미인 Shooting 이라고 한다. 마지막 표현이 가장 맘에 든다. 오늘도 바이크 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향해서 쏠 것이다.

오늘은 시가체(Shigatse;3860m)에서 4천m대 고개 둘을 넘은 다음 라체까지 160km정도 달려야 한다. 시가체에서 35km를 더 가면 트라 라(Tra La;4050m)가 있고 120km 정도 지점에 유롱 라(Yulong La;4600m)가 있다.
참고로 이 지역에서는 La는 ‘고개’를 뜻하고 -che, -tse가 붙은 곳은 ‘장소‘를 뜻한다. 오르막길과 지루한 언쟁이 시작되고 있다. 고도가 높아가면서 넓은 개활지에 펼쳐진 황량한 가을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고 간다. 많은 소와 양과 말들이 천고마비를 만끽하면서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삭풍이 불고 눈발이 날리는 엄동에는 자연 먹을 것이 부족하니 가능하면 가을에 열심히 먹어두어서 일용할 식량을 체내에 비축해야 한다. 우리도 유롱라 30km 전방에서 라면밥으로 점심을 충분히 먹어 체내에 식량을 비축했다.
서성준 대원은 배우 이대근 씨를 닮아서 ‘Little 대근’이라고 불렸다. MTB를 사서 처음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바리케이드에 박아 쇄골이 부러졌다. 의사의 부실로 뼈가 붙지 않아 나중에 다시 엉덩이뼈를 떼어다가 쇄골에 끼워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닉네임은 悲憤慷慨가 느껴지는 ‘분골쇄신’이다. 그에게 MTB란 사무친 원한이 서린 대상이다. 그런 그가 예상치 않게 티베트 원정에 끼겠다고 했을 때 상당히 놀랬다.
그러나 그는 이름값도 못하고 아침마다 코를 찔찔거리고, 낮에는 설사를 찔끔거렸다. 이 날도 서성준은 점심 잘 먹고 가다가 배가 아파 앞에 가는 나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고 한다. 산소가 해발 기준으로 65% 정도 된다. 산소가 부족하니 뱃속에서 음식이 충분히 산화되지(썩지) 못한 것이다.

점심이 늦어 과식하고 바로 움직이니 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토하사한 모양이다. 吐瀉癨亂하면 아무리 맛있는 珍羞盛饌이 있어도, 絶世佳人이 앞에 있어도 꿈쩍 않는다고 한다. 줌마들의 우상, 대그니 오빠가 찔찔이처럼 이래도 되는 거야?
유롱 라의 마지막 구간은 상당히 가파르고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 포장길이어서 멀리서도 보였다. 참 지루한 길을 오르다보니 수많은 탈쵸(經典이 새겨진 오색 깃발)가 걸린 개선문을 통과할 때 관중들의 열화 같은 박수처럼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작은 깃발(탈쵸)들이 바람에 떨면서 시방(十方)에 법어(法語)를 선포하고 있다. 평화와 자비를 토해내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유롱 라(4600m) 정상이다.

간단히 사진을 찍고 김연수와 함께 다운힐을 시작했다. 짧은 다운힐 다음 긴 평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트의 널따란 경지가 끝없이 펼쳐진 곳을 쉬지 않고 달렸다.
비상식량도 거의 다 떨어지고 물도 다 떨어질 때 쯤 제법 큰 마을에 들어가서 라체 호텔을 찾아갔다.
4천m대에서 159km를 달렸지만 체력은 별로 고갈이 안 된 것 같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는 여기는 라체(4050m)다.〈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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