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칼럼] 교학상장(敎學相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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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칼럼] 교학상장(敎學相長)
  • 승인 2008.05.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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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은 제 26회 ‘스승의 날’이었다. 1958년 충남 강경의 몇몇 여고생들이 병상에서 투병 중인 전·현직 교사들을 방문한 활동에서 비롯된 ‘은사의 날’이, 유신독재 시절 잠시 폐지되었다가 1982년 한국교총 등의 노력으로 국가지정기념일로 정식 선포되어 지금껏 이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지난주에는 우리 회원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웃음꽃 만발한 인사를 주고받느라 꽤 분주했을 것이다. 사제간의 아름다운 모습이야 정이천(程伊川)을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간 양시(楊時)와 유초(游酢)의 고사(故事), ‘정문입설(程門立雪)’을 능가하기 어렵겠지만, 카네이션과 노래가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정성어린 선물까지 건네지는 요즘 또한 절대 그에 못지않으리라!

그런데 행사장에 앉아 학생들이 합창하는 ‘스승의 은혜’를 듣기란 여간 고문이 아니다. 진심이 가득 밴 듯한 그들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참되거라 바르거라”를 몸소 보여주었는지에 대한 인간적 반성은 차치하고, 담당교과목의 지식을 필요·충분하게 전달해 주었는지에 대한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의 자기 반성이 자꾸만 환기되기 때문이다. 전공과에 배속되는 각종 질환의 뭔가 새로운 확실한 치료법을 하루아침에 정립하여 발표하기란 도통 불가능하지만, 사회의 일반적인 기대와 염원은 흔히 그것마저 넘어서기를 요구하게 마련인 까닭이다. 지금처럼 한의계가 극도의 불황을 겪는 때라면 더욱 더….

그러나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한의학은 근 십 수년 사이 놀랄 만큼 발전하였고, 지금도 발전 일로이다. 우선 과거에 비해 한의사 숫자가 얼마나 증가하였는가? 이전과 달리 주 타깃(target)으로 삼는 질병의 종류는 또 얼마나 늘어났는가? 아니 무엇보다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 곧 ‘학회’가 얼마만큼 많아졌는가? 특히 한방내과를 위시한 8개 전문 진료과목의 학회는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해 온 덕택에, 이제는 이들 학회지를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재할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런 성과를 그저 시대상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 비하에 다름 아니다.

소위 SCI 논문, 학진 등재지 논문 등이 반드시 한의학적으로 유의미하고 양질의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논문의 양식만큼은 확실히 갖추었다는 점에서라도 이들의 내용을 실제 임상에 적용시키기 - 실험논문보다 임상논문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에는 전혀 손색이 없다.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자신만이 겪은 몇 차례의 특수한, 이른바 ‘일도쾌차(一度快差)’의 경험을 마치 전부인 양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낮고, 실전(失傳)되기 일쑤인 일명 ‘카더라’ 통신이 아닌 Data Base화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도, 논문 발표를 주 책무로 삼는 학회는 분명 더욱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회야말로 자기 학문에 대한 정체성(整體性)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며, 한의사라면 누구나 학문적 기치를 드높이며 신명나게 뛰놀 수 있는 열린 마당이기 때문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하였다. 굳이 “배우고 나서 부족함을 알고 가르치고 나서 어려움을 안다(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는 출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의 공자님 말씀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들 모두는 인생이라는 대학에서 스승임과 동시에 또 제자임을 익히 알고 있다. 각종 학회의 발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 좋은 계절에,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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