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은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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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칼럼]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은 쓰지 말자
  • 승인 2008.05.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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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한의학의 과학화를 외친다. 과학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이다. 그런 점에서 한의학은 그 자체로 이미 견고한 과학체계를 갖추고 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한의계에 과학화를 요구하는 집단은 “재현성 높은 객관화된 한의술”이라는 표현으로 주장해야 옳다.

과학의 정의에 있어서 ‘정량화·객관화·재현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슈퍼컴퓨터와 복잡한 알고리즘으로도 3일 앞의 날씨를 내다볼 수 없는 기상학도 ‘과학’이며, 전혀 상반된 이론이 동시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경제학’ 역시 ‘과학’이다.
과학의 대명사인 물리학에서도 “100명의 양자물리학자가 있다면 100개의 양자물리학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학이 학문에게 ‘통일된 한 목소리와 객관적 체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과학의 속성이 그러함에도 한의학에 있어서는 왜 ‘정량화·객관화·재현성’을 요구하며 그러지 않는 것에 대해 왜 ‘비과학적’이라는 굴레를 씌우는가?
이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제도의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의학’이라는 것 자체가 산업과 제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측면도 한의학에 이러한 요구를 하게 되는 이유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려면 표준화가 되어야 하고. 그 대량 생산된 것이 예상 가능하게 소비되려면 ‘재현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또한 그 치료의 법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면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과 사회제도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이것은 ‘인지능력 시스템에서의 이해’가 아닌 ‘기계와 제도’가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산업과 연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학은 전 세계적으로 ‘질병과 치료의 객관화’ 보다는 ‘환자의 상태와 변화, 경험’에 더 초점을 기울였다.

관형찰색은 대표적인 인지능력에 의한 진단시스템이며. 현재 여러 공학분야에서 인지능력을 가진 기계를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다. 많은 공학자들은 “인간이상의 효율을 가진 기계를 만드는 것, 인지능력에 근접한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호소한다. 그 어떠한 기계도 인간을 따라오기 힘들듯 그 어떤 진단기기도 ‘인간의 관형찰색을 통한 판단’을 따라오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말보다 ‘기계’를 더 신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과학의 허상이요, 한편으로는 ‘인간의 지능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믿지 못하는 불행한 세태이다.

공상과학소설에서 보여지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는 이미 도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신을 찾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피조물인 컴퓨터 HAL에 의지하여 간다. 애니메이션 영화 ‘은하철도 999’에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난다. 이처럼 몸에 기계를 심고 그 기계를 더 신뢰하는 인조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말은 한편으론 한의학이 과학이 아님을 스스로 자인하는 말과도 같다. ‘한의술의 산업화’, ‘한의술의 사회화’와 ‘한의학의 과학화’를 혼돈해서는 안될 것이며 제도와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한의학이 학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 더 나아가 사멸해가는 동양학의 마지막 보고일 수도 있는 동양실용과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원형을 훼손하는 일이 ‘과학’ 이란 이름으로 재단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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