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60] 證脈方藥合編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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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60] 證脈方藥合編②
  • 승인 2007.12.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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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이국 땅, 뒤바뀐 주인공

『方藥合編』에 대해 미진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한 주 더 지면을 할애하기로 한다. 이 책이 구한말에 저술된 것이어서 『동의보감』의 성과와 동일 수준에서 논의하기는 어렵지만 1백년 세월이 흐른 최근까지도 여전히 유용한 의약지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유포된 것 또한 『동의보감』의 성가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중국 일원에 흩어진 한국의학문헌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北京의 中國中醫科學院圖書館, 中國科學院國家科學圖書館, 北京中醫藥大學圖書館, 長春의 吉林大學白求恩醫學部圖書館 등지에 이 책이 소장되어 있다.
금번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것은 미국 버클리대학에 소장된 아사미 문고에도 이 책이 수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몇 달 전 국내 방송사의 특집프로그램을 통해 보도된 아사미문고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유출된 조선시대 고서 4천여 책이 미국의 UC 버클리 대학 동아시아 도서관에 ‘아사미 문고’라는 일본 사람 이름으로 분류돼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도서관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서 3백만 권을 소장하고 있는데, 특별 서고 안에는 『고려사』, 『동국통감』 등 조선시대 고서 4천여 책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중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없는 유일본이 30여 권이나 있으며, 국내에 동종본이 있다하여도 한국에 있는 책의 모본이 되는 책들도 여럿이라고 한다.

예컨대, 보물 1127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천로 금강경’, 영조 때 청계천 바닥을 준설하면서 그린 ‘濬川계帖’,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서적도 19종 97책이나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책표지에 적힌 분류목록에는 일본 사람 이름인 ‘아사미 문고’로 표기되어 있다.
그럼 이 문제의 인물 아사미는 누구인가?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판사를 지낸 인물로 당시 그는 조선 고대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요즘말로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있었다. 그는 특히 조선시대 왕족이나 양반 집에서 나온 책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으며, 이렇게 모은 조선의 희귀 고서들을 서울에 있는 미쯔이물산을 통해 일본 미쯔이 문고로 보냈다.

당시 일제가 조선의 진귀한 서적들을 반출해 가자 玄采, 崔南善, 朴殷植 등은 朝鮮光文會를 조직해 고전 간행 및 보급 운동에 나섰는데, 이 때 펴낸 책 중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발해고』 등 주요 역사서와 『택리지』, 『성호사설』, 『경세유표』 등 주옥같은 명저들이 포함되었는데, 훗날 행림서원에서 『향약집성방』을 간행하게 된 것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 다른 한편 조선광문회의 고전간행 사업의 주역 가운데 한 분인 玄采(1856~1925)는 漢語譯官 출신으로 바로 惠庵의 제자로 알려진 玄公廉의 부친이다. 현공렴은 1908년 대한해협이 표기되고 간도를 조선영토에 포함해 그려 넣은 대한제국지도를 발행하여 민족자존을 내세우고자 힘썼으니 이 모든 일이 또한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여하간 1950년, 패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일본의 미쯔이 문고가 이 책들을 7천5백 달러의 헐값을 받고 버클리에 매도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일본인 이름의 라벨을 붙인 채 지내야만 했던 조선의 희귀고서들. 당장 국내로 반환받지 못할 형편이라면 우선 이름이라도 우리 것으로 바꾸도록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명확히 약탈문화재로 간주하기에 쉽지 않아 보인다.

또 이름이 못마땅하다고 여겨진다면 우리라도 먼저 나서서 새로운 이름을 달아주자. 자꾸만 일본이름 부르면서 성화를 내기 보다는 버클리의 조선문고라 하든지 아니면 서울문고라 칭하는 것은 어떨까?
이 문고 안에 『證脈方藥合編』도 어엿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해진 사연이야 기구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조선의학의 말미를 장식한 이 한권의 책이 미국의 대학도서관 귀중서고에 살아남아 있는 것도 대단히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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