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창선의 세상보기3] 한약을 왜 서양 약리로 해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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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전창선의 세상보기3] 한약을 왜 서양 약리로 해석하나
  • 승인 2007.12.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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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성분’은 미(味)의 일부분이다

○… 한의원은 아름다운 식물원이다.
약장 앞에 조용히 눈을 감고 서있으면 숲속의 향긋한 풀내음, 들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어느새 내 몸과 마음은 푸르게 젖어든다.
약장 속의 꿀풀·용담초·모란꽃·작약꽃·도라지·궁궁이·숭엄초는 고운 꽃으로 유혹하고, 박하·향유·배초향·창포의 즐거운 향기는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대자연의 햇살과 바람과 비속에서 자란, 수많은 풀과 나무들이 담겨있는 한의원의 약장은 수천, 수만평의 식물원이다. 약초를 연구하는 본초학자나 한의사를 자편가(자鞭家)라고 부르는 이유인 것이다.
자편가는 신농(神農)이 산야를 누비며 풀과 나무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해 붉은 회초리를 휘둘렀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맑은 바람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낮과 밤의 변화 속에 자라는 약초들, 그들은 자연의 위대한 생명 운동 속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 맺는 생명체들이다.

과거의 우리 선배들은 이런 생명체들을 고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다각도로 관(觀)하면서 온전하고 전체적인 모습 속에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인식방법이 형색기미(形色氣味)인 것이다.
또 청대(淸代)의 학자 추윤안(鄒潤安)은 형색기미뿐만 아니라, 발생시기, 산지, 성정(性情) 등등까지 고려하여 약초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을 확장시켰고, 당종해(唐宗海) 역시 본초문답(本草問答)을 통해 여러가지 인식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약초를 해석하는 일반적인 경향은 어떠한가?

○… “홍삼이 백삼보다 훨씬 뛰어나다. 홍삼이 백삼보다 뛰어난 이유는 홍삼에 미량 존재하는 특이 성분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삼은 홍삼의 특이 성분을 60배나 증폭시킨 획기적인 제품이다.”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 아예 전면 광고로 실리는 모 벤처기업 제품의 선전문구이다. 광고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 제품이 산삼보다 오히려 효과가 더 뛰어날 것 같은 느낌이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비싼 가격을 마다 않고 주문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다.

인삼이나 산삼을 특정 성분으로만 판단한다면 저 벤처회사의 발언은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성분이란 형색기미(形色氣味)에서 미(味)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초학에서 약초를 인식하는 방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많은 한의사들이 한약을 성분이나 지표물질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공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약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향은 점차 서양 약리 위주로만 진행되고 있다.
인삼은 물론이고 모든 한약들을 서양 약리 위주로 인식, 판단한다면 한의사는 약초를 논할 이유도, 자격도 없는 것이다.

‘人工’이 ‘自然’을 앞설 수는 없다

○… 인삼의 지표물질은 인삼의 잔발에 많다. 서양의 논리에 의하면 인삼은 잔발만 잘라 쓰고 몸통은 버려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잔발은 떼고 큰 가지와 몸통으로 홍삼을 찐다. 큰 가지나 몸통으로 홍삼을 만드는 까닭을 저들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가?

전통 한의학에서 한약을 해석하는 방법이 아니고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동원(東垣·중국 금나라 때의 의학자 李고의 號)의 눈 밝음이 밝혔듯이 인삼을 사열(瀉熱)의 성약(聖藥)으로 쓰려면 잔발이 뛰어난 효능을 보일 것이고, 온보(溫補)에 쓰려면 몸통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질의(疾醫)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졌던 길익동동(吉益東洞·일본의 한의학자, 1702~1773)이 한국인삼은 효능이 없다고 했다.
인삼을 심하비결(心下비結)을 치료하는 사법(瀉法)에만 응용했던 동동의 입장에서 단맛이 나는 한국인삼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동의 견해를 통해 몇 가지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다.
즉, 동동이 생존하던 당시에 그가 경험한 고려삼은 6년근 홍삼일 가능성이 클 것이고, 또 쓴맛이 났을 일본삼은 한국과 일본의 토질 차이뿐만 아니라 재배 년수가 고려삼에 비해 짧았을 것으로 추정된다.(4년근 인삼의 몸통은 조금 달고 잔뿌리는 쓰다. 6년근이 되어야 비로소 큰 다리가 굵어지고 몸통에서 잔뿌리까지 모두 단맛이 난다. 그래서 보법에 쓰는 홍삼은 6년근으로 찐다.) 같은 인삼이라도 재배년수, 산지, 형, 미 등에 따라 그 약성이 천지차이가 나는 것이다.

고온고압으로 인삼을 수치(修治)하여 ×삼을 만들었다는 말은 탄소로 인공합성 다이아몬드를 만들었다는 뜻이고, 산삼의 조직을 배양하여 산삼과 98.8% 동일한 성분의 배양근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의 조직을 배양하여 원숭이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과학적 열정은 높이 산다.
그러나 인공(人工)이 자연(自然)보다 우위에 설 수는 없는 것이다.

‘한의학은 지혜의 학문’

○… 지금의 추세대로 나간다면 국민들의 한약에 대한 인식은 전혀 한의학적이지 않은 서양 논리에 의해 좌우될 것이며, 한약의 해석 방법은 우리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편리한 질서를 좋아하는 관리들도 서양적 방법론을 쫓아 갈 것이고, 한약을 취급하는 시설에는 양약사만 필요하지 한약사나 한의사들은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변화, 추위와 더위를 이겨가며 해를 거듭하며 자란 귀한 존재들을 단지 성분이나 지표물질로 규정지을 수가 있을까?

한약은 흐르는 시냇물 물소리이고, 소나무 숲 속을 스치는 바람소리이다. 심지어 형색기미도 최소한의 인식방법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의학은 지식이 아니고 지혜의 학문이다. 우리 한의사들은 지금부터라도 한약을 논할 때, 형색기미로, 성정으로 인식하고 평가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전창선
서울 강남구 튼튼마디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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