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정책들을 보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듯 하면서도 왠지 기존의 존재방식을 뒤흔드는 것 같고, 때로는 의료인에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듯해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의료법 개정이니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이니 하는 법률 제·개정안으로 홍역을 치렀는가 하면 건강보험분야의 변화도 변화무쌍했다. 올 한해 건강보험정책은 의료급여제도 개선, 정률제 전환, 종별 수가계약제가 시행됐다.
건강보험분야에서 이밖에도 DRG 지불제, 포괄수가제, 총액계약제, 의료저축제도, 소액진료비 본인부담제, 본인부담금 상한제 등의 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어느 의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보건복지부의 캐비닛에는 전 세계의 의료정책이 다 들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물며 다른 보건의료정책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식약청,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산업진흥원 등 정부산하 연구기관에서는 정책의 기초가 되는 자문회의, 연구, 시범사업 방안이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의료단체도 정책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등 정책인프라 구축에 여념이 없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지난해 11월 한의학정책연구원을 설립해 정책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정책연구원은 설립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연구인력이 절대 부족해 정부 정책의 각 프로세스별, 사안별 맞춤 정책을 생산하기까지는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큰 비용이 소요되는 연구사업은 장기과제로 미룬다하더라도 기초자료를 축적하고, 연구방향을 수립하는 등 일련의 정책프로세스를 가다듬는 일 정도는 한의계 지도자들이 관심만 가지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행히 한의협이 조만간 통계백서를 낸다고 하니 자못 기대된다.
한의계가 정책역량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각 단체를 정책집단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막연한 친목단체적 성격으로는 변화하는 의료환경에 맞춰가기도 힘들다. 더 늦기 전에 정책인프라 구축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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