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진료실의 행복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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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진료실의 행복한 고민
  • 승인 2007.07.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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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발전을 위한 많은 주장과 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견이 존재하는 문제들도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주장조차도 실제로 실천에 옮겨지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고, 또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정부, 협회, 학회, 대학, 한의학 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될 뿐이다. 개원의라는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도 고민하시는 많은 원장님들을 위해 필자는 ‘임상연구’라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한의학의 과학화, 치료 효과의 입증, 치료 영역의 확대에 핵심적인 것이 한약과 침구치료의 효과에 대한 임상연구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 EBM)의 광풍이 몰아친 후 서양의학계 조차도, EBM을 들먹이지 않고는 어떤 논의도 할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한의계에서도 임상연구들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양과 질 모두에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연구비가 많이 들고 IRB(기관 심의 위원회) 심사도 통과해야 하므로, 개원가에서의 임상연구는 불가능한 것인가? 국립한의학임상시험센터 설립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대학병원 임상시험센터 운영실태를 볼 때, 개원가를 포함한 한의계 전체의 임상연구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연구가 활성화되어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병원 위주의 양방의료와 달리 전체 한방의료에서 개원가가 차지하는 양적, 질적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임상연구를 뭔가 거창하고 힘든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바로잡는 데서 개원가의 임상연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무작위 배정 대조군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 RCT) 만이 임상연구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물론 RCT가 여러 임상연구 방법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로 평가되지만, 처음부터 무작정 RCT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증례 보고, 단면연구, 후향적 환자-대조군 연구, 전향적 관찰 연구 등의 연구들에서 얻어진 결과를 바탕으로 RCT를 설계하고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한의학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임상연구 방법론이라는 점에서도 RCT는 많은 한계를 가진다. RCT는 거대 제약회사의 신약 효과를 입증하는데 효율적이지만, 개별화된 치료를 장점으로 하는 한의학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한방 치료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결론만이 쏟아져 나올 위험성이 있다. 양방 쪽에서도 그런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실용적 임상연구(Pragmatic Clinical Trial : PCT)로 눈을 돌려 최대한 현장의 실제 임상을 반영하는 연구방법론들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환자의 진단과 치료 전 과정에 대해 충실히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많은 사실을 나열적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기본 사항(키, 체중, 과거병력, 음주, 흡연력, 양약 복용 등)과 변증의 근거가 되는 핵심사항들을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료차트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몇몇 학회들에서 변증, 탕증 진단을 통일하기 위한 문항, 척도들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모아진 난치병의 치료 증례들은 꼭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그 다음 단계의 임상연구를 설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치료율을 높이기 위한 고민만이 아니라, 잘 치료된 환자 사례들을 보고하는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행복한 고민을 하시는 원장님들이 많으리라 믿는다. 연구 수행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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