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번 답사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내몽고 육종용과 쇄양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재작년에 같은 곳을 답사하고 오신 원광대 송호준 교수께서는 차로 왕복 14시간을 끝이 없는 사막 길을 달리셨다는데, 지금은 도로 사정이 좀 나아져서 왕복 10시간이면 족할 거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 영하(寧夏) 구기자(枸杞子)
빨리 사막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었지만, 가는 길에 영하 구기자<사진>를 보러 가자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옛 본초서에 ‘영하의 구기자를 약으로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쪽 영하 지방의 구기자가 유명하단다.
과연 구기자 재배지에 가 보니, 허명(虛名)은 아니었다. 구기자나무가 끝도 없이 심어져 있었다. 9년 정도 된 것이라는데, 나무의 지름이 약 5cm 정도로 꽤 굵었다. 빨갛게 구기자 열매가 달리면 아주 장관이겠다. 마침 구기자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보라색꽃잎과 노란꽃술이 무척 잘 어울린다.
입구에는 재배지에서 운영하는 큰 상점이 있는데, 정말 구기자 천국이다. 구기자로 못 만드는 게 없다. 구기차, 구기주는 기본이고, 구기과자, 구기사탕, 구기껌, 구기커피까지…… 시식해보라고 여러 가지를 주는데, 구기자 자체의 맛과 향 때문인지, 하나같이 입에 맞다. 구기자 잎으로 만든 차는 맛이 깔끔하면서도 구수했는데, 안신(安神)작용이 있다고 한다. 며칠의 강행군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듯 했다.
■ 신비한 매력 감도는 사막
우리는 구기자 재배지를 나와 곧장 내몽고 사막으로 달렸다. 사실 사막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쩜 산도 없이 이렇게 평지만 계속 될 수 있을까? 변변한 나무도 거의 없지만, 황폐하다는 느낌 보다는 이상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사막에는 계속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신비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왕복 10시간이라는 말이 쉽지, 2시간 여를 고속도로를 달려온 이후에는 아예 포장도 안 된 도로를 계속 덜컹거리고 가고 있다. 그러더니, 인제 드디어 도로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아닌가? 과연 길은 제대로 가는 걸까? 잘못 왔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길도 없는데, 또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겨우겨우 사막을 힘겹게 달려가던 버스가 모래언덕을 넘지 못하고 그만 모래 속에 빠져버렸다. 우리는 모두 내려서 버스를 밀어야 했다. 여기서 못 빠져나가면 육종용 보러가기는 틀린 게 아닐까? 세찬 모래바람이 뺨을 때린다. 30분 정도 애를 썼을까, 겨우 버스가 모래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저쪽에서 전대균 원장님이 소리를 치신다! 사막에서 산삼이라도 발견하신 걸까? 아! 야생 육종용(肉종蓉)이다! 정말 육종용의 흰 꽃이 청초한 자태로 피어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 있어 더욱 그래 보였다. 뿌리를 캐어보니, 정말 성질이 윤(潤)한 것이 사막에서 어떻게 이런 것이 자랄까 싶다.
서둘러 육종용 재배기지로 가고 싶은 마음에, 안내자의 지프차에 열 명이 끼워 타고 계속 가기로 했다. 역시 지프차는 훨씬 빨라서 20분여를 더 달려 재배기지에 도착했다.
■ 육종용의 바다에 갇히다
아! 사막 한가운데서 본 것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귀한 것이었다면, 이곳에선 아예 육종용에 둘러싸여 버렸다. 사방에서 육종용의 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흰 색 통꽃의 끝부분은 보랏빛인데, 빙 둘러서 무리지어 피어 있다.
여기서 사막인삼이라 불리는 육종용은 정말 신기한 한약재임에 틀림없다. 잘 보면 어린 것은 배아의 모습과 닮았고, 다 자란 것은 길이가 1미터도 넘는데, 용의 비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그 힘이 느껴진다. 부드러우면서 강한 힘!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육종용에 대해 ‘이것은 보(補)하되 맹준하지 않으므로, 종용이라고 부른다. 종용은 온화하고 완만한 모양이다.’라고 하였는데, 틀림없는 진술인 것 같다.
더위와 배고픔에 지쳐 있을 때 육종용으로 담근 술을 한 잔 먹었는데,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육종용을 써본 일이 없고, 사실 쓸 생각도 못 해봤는데, 역시 견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육종용이 괜히 친숙하게 느껴지고 자꾸 써보고 싶으니 말이다.
육종용은 보았으나, 쇄양(鎖陽)을 보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운 좋게도 돌아가는 길에 사막 한가운데서 야생 쇄양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 쇄양은 사막에서 자라는 길쭉한 녀석이라는 점에선 육종용과 같은데,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좀 더 거칠다고 할까? 본초강목에서는 ‘그 공력이 육종용의 백배나 된다’고 하는데, 확실히 더 강해보이긴 하다.
쇄양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막을 빠져나왔다. 온 몸이 모래투성이였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즐거웠다. 정말 살아 숨쉬는 공부를 한 것 같다.
차창 밖 풍경이 사막의 모래바람 탓인지 뿌옇게 흐려 보인다. 갑자기 아련해진다. 온 몸을 던져 사막을 헤집고 다녔던 우리 답사단의 모습이 마치 불로초를 구하러 다니는 진시황의 사자(使者)같다.
그렇다면 다음에 구하러 갈 영약(靈藥)은 무엇인가. 다음 우리의 걸음은 올 여름 동충하초(冬蟲夏草)를 찾아서 청해성(靑海省)으로 향할 것 같다. 올 여름 다시 한번 뭉칠 그날을 기다린다. <끝>
이세나(세명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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