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원’ 설립이 한의계에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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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원’ 설립이 한의계에 갖는 의미
  • 승인 2007.04.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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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大韓醫院) 설립 100주년, 제중원(濟衆院) 122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13억원이 넘는 세금을 동원하여 대대적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연세대 의대 의사학 교실의 반대 기고와 민족 문제 연구소의 감사 청구 및 기념우표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불구하고 사업은 진행 되었는데 기념식 행사가 있었던 3월 15일, 참석하기로 했던 문화재청장, 교육부 장관은 참석을 취소했으며 다음 날 서울대 교수 일부에서 규탄 성명까지 발표 되었다. 이 논란의 중심이 된 ‘대한의원 설립’은 사실 한의계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이야기를 꺼내어 본다.

우선, 대한의원 이전의 역사부터 더듬어 보자. 대한의원의 전신이었던 광제원은 1900년(光武 4년)에 내부병원(內部病院)을 개칭한 의료기관으로, 조선 정부에 직속된 유일한 관영(官營) 병원이었다. 한약소(漢藥所), 양약소(洋藥所), 종두소(種痘所) 세 곳을 두어 동서 의술을 절충하였으며, 한약·침구와 함께 키니네(금계랍으로 불리던) 등의 양약을 처방했다. 제도상으로 한양방이 동시에 사용되는 의료 기관이었으나 그 구성원은 전원 한의사 출신이었다(양의 1명을 고용하려 하는 계획이 있었으나 재정과 효율 문제로 무산 되었고, 양의에 대한 지식이 있던 한의사들에 의해 양의학이 시술 되었다). 서양 의학의 주체적 수용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인 고문의 간섭이 날로 심해졌고, 1906년 4월 초에 광제원의 의사에 한해 예고도 없이, 법에도 없는 양의학 학술 시험을 실시하여 한의사를 낙제시키고 자격 미달이라 해서 축출하였다.
1907년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주도하여 대한의원으로 개편되었는데, 지석영·이규준 등 몇 명 외에는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바뀌었으며, 1908년 10월 24일 대한제국의 국고를 털어(무려 80만원, 당시 정부 예산의 1할 정도 규모의 금액이었는데, 대한제국이 국채 보상 운동을 하게 된 주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신축된 대한의원 개원 때에는 조선인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대한제국의 국고를 털어 신축하였음에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가 일본인이었으며, 식민 지배의 선전용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10년 ‘조선 총독부 의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26년 경성제국대학에 포함되어 대학 병원이 되었고, 광복 후 서울대 병원이 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상이 광제원에서 대한의원 설립을 거쳐 서울대 병원까지 이어져온 개략적 역사이다.
예전부터 서울대 의대가 Allen이 세운 광혜원(廣惠院-제중원의 전신)을 ‘국립’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들의 역사로 주장하는 등 역사를 늘이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이번 사업은 그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대한의원에 대해 물리적 연관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나, 서울대가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하였음에 불구하고 그 설립을 해방 후인 1948년 8월로 잡아 경성 제대를 자신의 역사로 기념하지 않듯, 대한의원을 자신의 역사로 기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울대병원 측은 “조선 총독부 100주년 기념사업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한의원, 심지어 총독부의원과 경성제국대학 부속의원의 역사조차 한국 의료계 전체가 반성적으로 공유해야 할 경험적 자산이다”, “서울대병원의 뿌리 찾기라는 관점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대응하였으나, 행사 내용은 ‘반성’이 아니라 ‘기념 축제’쪽에 가까웠다고 보이며, 여러 면에서 자 병원의 역사로 기념하는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각계의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겠다 하겠다.

그러나, 대한의원 설립에는 앞에서 보았듯 ‘일제 식민 통치의 상징’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광제원의 폐지와 대한의원의 설립으로 한의학은 정부 산하의 조직에서 없어지고 민간 의료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자주적 서양 의학의 도입의 싹은 말살되고 식민지 의료 체계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한의학의 국가 조직 배제’, ‘주체적 서양의학 도입의 좌절’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 집단이었던 광제원의 조선인 의사들을 잇는 한의계의 의견은 없이, 각계각층의 논박이 지속되었던 근간의 현실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연희(서울 강북구 한사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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