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채한 교수의 SYMPOSIAC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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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채한 교수의 SYMPOSIAC⑤
  • 승인 2007.03.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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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富山)와 일본 전통의학 캄포(漢方)(1)

대구한의대 채한 교수는 일본 도야마대학 화한(和漢)진료학강좌 시마다 유타카 교수의 초빙으로 지난 1~2월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전통의학 캄포에 대한 방문기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현대 일본 전통의학은 필자를 포함한 한국 한의계에 알려져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과장해 말한다면, 수준급 연구는 많이 발표되는 것 같은데 실제적으로는 드러나는 정체는 모호하다고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국제학회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어 본 일본인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일본 전통의학에 대해서는 그저 피상적인 몇 가지 사실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동안 한국 한의학을 말살하려 했다는 것, 진료에 있어서 복진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 쯔무라(tsumura)라는 초대형 한방(漢方) 제약회사와 세린(serin)라는 세계적인 침 제조 회사가 있다는 것, 도야마(富山)라는 도시는 300년 한방 산업의 전통을 지니고 있기에 한방 산업 클러스터의 모델로 회자되고 있으며, 도야마대학(前 도야마의과약과대학)에 일본 전통의학을 위한 일류 부속 연구기관들이 있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 미지(未知)의 캄포(漢方)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지리적으로는 인천공항에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너무나도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기실 알려져 있는 것은 중국보다 매우 적다.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불편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경제와 산업에 있어서는 너무도 가까운 이웃이다.
또한 한국의 9배나 되는 경제규모를 지닌 선진국으로서, 과학계의 선두 그룹임과 동시에 게임 및 애니메이션 산업의 세계 중심이다.

그렇다면 전통의학은 어떠한가. 일본 고유의 전통의학은 평화와 번영의 에도(江戶) 시대(1600~1868)동안 대단한 르네상스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소개되어 있는 일본 전통의학 서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현재 일본 전통의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입문서로는 조기호 교수님(경희대)의 번역으로 소개된 ‘서양 의학자의 한방 진료학’(집문당)이 유일하다 하겠다. 중국 중의학(中醫學, 중국 전통의학)에 대해서는 각종 의학 제도, 연구 서적과 논문, 최근 연구 경향 등등 많은 것을 직접, 간접적으로 듣고 있음에도 가까운 캄포(漢方, 일본 전통의학)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필자가 화한진료학강좌(和漢診療學講座) 시마다 교수님의 초청으로 미지(未知)의 나라 일본 도야마대학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한국 한의학의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사상의학을 도야마대학 21세기 COE 프로그램(Advanced Approach to Personalized Medicine Based on Oriental Philosophy)의 일본 의학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도 있었지만 일본 전통의학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더 할 수 없는 기회라는 점이었다.
도야마 국제공항에 도착한 날은 부슬거리는 비가 내렸고, 비행장을 굽어보는 다테야마(立山)는 이곳이 눈으로 유명한, 한국과 일본의 스키어들이 즐겨 찾는 호쿠리쿠(北陸)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 한방 산업의 도야마

도야마는 무엇보다 한국 전통의약 산업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곳으로, 과거 300년 전통의 일본 한방산업(漢方産業)의 모태라 할 수 있다.
이곳의 발전된 전통의약 산업은 한국 한방산업(韓方産業) 클러스터(cluster)의 모델케이스로 다루어졌었으나, 대부분 피상적인 일본 산업 시찰에 머물렀으며 일본 한방(漢方)과 한국 한방(韓方)간의 현격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도야마는 과거 월중(越中)이라고 불렸으며, 나라(奈良)시대부터 전통약재의 생산과 교역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단순한 약재의 취급에 머물러 있던 도야마의 전통의약 산업은 1690년 도야마의 2대 藩主(오늘날의 지사)인 마에다 마사토시(前田正甫)가 상비약으로 지니고 있었던 한곤탄(返魂丹:반혼단)을 사용하여 參勤交代[필자주: 에도 바쿠후(江戶幕府) 때 지방 영주들을 정기적으로 일정 기간마다 에도로 불러들임으로서 지방 세력의 성장을 방지했던 제도. 일본 상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로 에도(江戶)에 갔을 때 다른 번주의 복통을 고친 사건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越中 返魂丹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도야마의 다양한 가정상비약(配置家庭藥)의 판매(賣藥)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선용후리(先用後利)’라는 특이한 판매 방식을 사용했는데, 새로운 약으로 가득 차 있는 가정상비약 상자를 전국의 각 가정에 일단 무료로 보급하여 먼저 이를 사용(先用)하게 하고, 3~6개월 이후에 약장수가 정기적으로 가정을 돌면서 사용량을 확인하고 보충하면서 결산(後利)하는 결제 방식을 말한다.

이 당시 고객 정보와 사용량을 기록하였던 영업 장부는 사업의 가장 중요한 판매기록으로서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데, 대를 이어온 사업들은 현재 약 540억 엔에 이르는 일본 가정상비약 시장의 절반 정도를 도야마 현이 차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배탈이나 설사에 사용했던 친숙한 이름의 정로환(正露丸)은 이곳 도야마에서 생산되는 3000여 품목의 가정상비약의 하나이며, 이는 과거 러-일 전쟁(1904년)을 위해 개발한 전쟁용 한방 의약품인 정로환(征露丸; 러시아 정복을 위한 환약)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군진 한의학을 이제야 정립하고 있는 한국보다 100여년 앞서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인 사실이다. <계속>

채한
現 :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대구한의대의료원, 한방임상시험센터
前 :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하버드메디컬 스쿨, 한국한의학연구원
연락처 : www.chaela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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