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한의대에서의 서양의학 교육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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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한의대에서의 서양의학 교육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 승인 2007.02.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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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마다 많은 한의대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과목별로 성적 처리가 끝나 낙제, 유급 대상이 발표되면 학생들의 읍소와 항의가 이어지는데, 양방과목 특히 전임 교원이 아닌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과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학생들의 불만은 더 커진다. 이런 일을 겪은 후에는 담당 강사도 강의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통보하고, 학교 측에서는 새로운 강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양방과목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과목, 대충해서 낙제만 하지 않으면 되는 과목으로 학생들 다수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대에서 서양의학 교육은 전체 시간에서 32.6%, 학점에서는 22.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오희철 外,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통합교육과정개발 가능성에 관한 연구, 1998).
2005년 범의료 한방대책위원회는 9개 한의대 교과과정을 분석하여 “고유한방과목은 6년 중 1년 4개월에 불과하고, 임상 한방의학의 70~80%는 현대의학 내용이기 때문에, 의학교육의 일원화가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실제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 양방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양이 아니라 질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양방 지식과 기술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그것을 따라잡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내용(특히 오래된 한방과목 교과서 안에 수록된 양방내용들)을 배우게 된다.
둘째, 양방 기초과목을 전담할 질 높은 교수요원의 확보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셋째, 양방 지식을 한의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거나 비교, 비판하는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때로 많은 혼란을 겪게 된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한의학에 대한 기본 믿음이 없이 양방적 진단과 치료에 편향되거나, 아니면 양방을 무조건 비난하는 양 극단으로 갈리게 된다.

■ 서양의학 교육목표 뚜렷해야

한의사가 되는데 왜 서양의학을 배워야 하는가, 최소한 어떤 것을 알아야 하는 가에 대해 목표가 뚜렷이 제시될 때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부여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한의대에서의 서양의학 교육은 의대에서 배우는 양방 지식들을 단지 압축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표를 가져야 한다.

첫째, 양방의 기본 관점과 사고방식이 한방과 어떻게 다른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야 하고, 새롭게 up date되는 지식들에 대해서는 필요할 때 따라 잡을 수 있는 방법과 도구(인터넷, 의학서적, 논문, 학술행사 등)를 교육해야 한다.
둘째, 실제로 양방에서 행해지는 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평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질환을 다루는 것 보다는 흔히 접하는 주요 질환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서양의학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유럽의학, 비주류의학, 보완대체의학, 최첨단 현대의학 등)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회 차원의 보수 교육이나, 각 학회들의 학술 활동도 이런 관점에서 내용이 개선된다면 실제 한의사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불필요한 과목 대폭 줄여라

구체적으로는 불필요한 과목이나 내용을 대폭 줄이고, 한의사의 입장에서 필요한 내용들이 강화되도록 교과과정이 개선되어야 한다.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예방의학 등의 과목은 한의학과 연결시켜 강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락, 경혈과 해부학적 구조물을 연관시켜 학습하고, 한방 생리학과 양방 생리학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학습할 수 있다면 학습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화학, 병리학, 미생물학 등은 기초의과학의 명칭으로 통합하여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을 학습하도록 하고, 진단검사의학, 진단방사선학 등은 내용이 보충, 강화되어야 한다. 점점 더 많은 질환이 면역계의 이상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면역학은 좀더 심화해서 강의해야 하고, 서양의학사, 의학철학, 의학통계, 임상연구 방법론의 기초에 대한 강의가 특강형태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기초과목 학습으로는 구체적인 임상에 관해서 알기 힘들므로, 한방 임상과목의 강의와 실습에서 각 분야별로 흔한 질환, 한방 치료의 주 대상이 되는 질환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최신 정보로 전달될 필요가 있다. 한의학을 양방식의 분과로 나누어 교육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미 각 과별로 강의가 이루어지는 현실에서는 의대에서 시도하고 있는 질환별 통합교육으로 나아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세부적이며 구체적인 개편 내용보다는 교과과정을 과감하게 개편할 것인가, 지금 이대로 답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한의사의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내용을 열성적· 창조적으로 강의해 줄 수 있는 교수요원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결국 한의대 재단과 범 한의계가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 얼마나 투자할 용의가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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