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덕 칼럼] 보스 문화와 정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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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덕 칼럼] 보스 문화와 정책②
  • 승인 2007.01.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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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보스문화의 가장 큰 폐단은 충분한 논의와 정해진 절차를 건너뛴다는 점이다.
최근에 일어났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4 년 한약학과를 둘러 싼 약사법 개정합의 파동이다. 이 사건은 통합약사를 저지하기 위해 중앙과 전국에 비상대책위를 구성, 가동해 놓은 상태에서 한의협회장, 약사회장, 복지부장관이 비밀리에 두 차례나 만나 95년의 약사법 개정방향 마무리를 논의하고 ‘합의문’을 만들면서 소정의 합리적인 절차들을 생략해 버림으로써 합의 성과와는 별개로 중앙과 지부단위의 많은 비대위를 닭 쫓던 뭐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다.

사실 이 일로 인해 한의계가 극심하게 분열과 상호불신의 늪에 빠지기도 하였다. 회장단 간, 중앙이사 간, 시도지부장 간, 분회 간의 반목이 그 다음 해의 IMS 사태와 회장불신임으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며 그 결과로 탕진된 한의계의 에너지 소모는 얼마나 컸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회장의 발상과 결단이 이렇게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고 회장 측근들은 그것을 합리화 시키는 것에 급급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이 사태는 발원단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충분히 예기되었던 일이다.
즉, 94년 한약분쟁 막바지 단계에서 한약학과를 “약대에라도 우선 두고 나중에 한의대로 옮기거나, 한의대에도 설치케 하거나, 독립 한약학대학을 설립하자”는 당시 협회 집행부 측의 견해와 “한약학과가 설치되지 않거나 늦게 설치되더라도 약학대학에 두면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부딪친 바 있었다.

이때에 전자는 한약분쟁 승전 분위기로 인한 자신감으로 후자가 지적하는 “통합약사 불가피, 한의약일원론 파괴와 적통성 변화” 경고는 완전히 묵살되었으며 전한련은 11개 한의대학장 공동명의의 “약대 한약학과 절대불가” 성명을 무산시킴으로써 향후 10년간을 이 문제로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결정된 결정적인 동기가 바로 보스의 카리스마(?)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하나는 한방전문의제도의 입법과정이었다. 한방전문의제도가 협회 대의원총회에 상정된 것은 1994 년에 회장의 결정적 의지에 의해서였다.
사실 전문의제도는 한방병원협회의 숙원사업이었는데 한방병원 내 의료 인력의 수요공급이 원활하려면 전문의제도는 필수이다. 그러나 일선 개원 가에서는 한의학의 통합성 자체가 깨진다는 이유로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회원들의 여론 수렴 과정이 전혀 없이 회장의 지배적인 의지에 따라 전격 상정된 거나 진 배 없었다.

이 사안은 “양방의 전문의제도 도입 경우처럼 한방도 경과조치를 통하여 개원 경력 한의사의 기득권을 인정하느냐”와 “앞으로 한방병원에 들어가 수련하는 졸업생들에게만 전문의시험 자격을 주자, 기 수련자나 전공의 수련교수에게도 일체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말고 전문과목도 표방하지 못하게 하자”는 안이 부딪쳤으나 당시 협회장과 병원협회장이 복지부장관 앞에서 “이의 제기 안 하겠다”는 합의 도장까지 찍음으로써 지금까지 논란과 대립이 끝나지 않은 사안이다. 그 당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것이 학생들의 협회점거 농성인데 나는 지금도 회장단이 여기에 결코 굴복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 입법 결과는 임상교수와 한방병원 스태프들에게 전문의 문호를 허용하고, 결국 전문과목표방금지가 해제됨으로써, 힘없는 한방병원 기 수련자와 개원한의사에게 유독 피해를 입혔으며 개원가가 갖고 있는 한의학적인 특수성이 제도권에서 사장되게 되었으며 한의학 임상의 정통성이 협진중심의 한방병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다.
한방전문의의 교육 수련이 서양의학 혹은 협진 위주의 임상교육에 의하여 양성되는 시발점이 되어 일인지배와 파벌문화의 또 하나의 작폐를 기록하였다.

나는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하려 할 때 나무에 비교해 보라고 하고 싶다. 뿌리는 당연히 “한의학”이고 원 줄기 둥지는 명분이 될 것이며, 가지나 잎은 각론에 속하게 되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의계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이 뿌리-줄기-잎의 차서가 그렇게 혼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에는 명분과 실리가 매우 어지럽게 섞여서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지도자는 어떤 큰 방향을 잡고서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많은 방법론을 찾아 구사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명분과 실리를 혼동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데, 이때에 명분만을 충족시키려 하면 실리에서 지대한 손실을 입게 되어, 그것이 명분마저 압도하고 만다.
반대로 눈앞의 실리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명분 자체가 퇴색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결국 실리마저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전자에 있어서는 “약대한약학과 개설 허용과 3만 한약조제약사 배출”이요, 후자는 “기형적 한방전문의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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