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1] 金海秀(1858~?)
상태바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11] 金海秀(1858~?)
  • 승인 2007.01.05 1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webmaster@http://


학술과 교육에 헌신하여 근현대를 빛낸 醫人

한 분야에 아무리 정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러 권의 저술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한의학의 역사 속에서 드물게 여러 醫書를 쓰고 학술적으로 이름을 낸 인물로 金海秀가 있다. 본관이 光山이며 호가 又松인 金海秀는 많은 저술로 이름이 높다. 그의 저술로는 『醫方大要』(1928년 간행), 『圖解運氣學講義錄』(1928년 간행), 『萬病萬藥』(1930년 간행), 『大東醫鑑』(1931년 간행) 등 다양하다.

1915년 10월 23일 朝鮮物産共進會가 창덕궁에서 개최되자 醫生들은 全鮮醫生大會를 개최하여 한의사단체를 만들 것을 결의하여 같은 해에 全鮮醫會가 발족하게 되었다. 매일신보 1916년 2월 24일의 기록에 따르면 金海秀는 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총무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당시 임원들로는 회장 趙重應, 부회장 金性璂, 총무 金海秀, 평의장 景道學 등이었다. 이 시기 적극적인 회무활동으로 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東醫報鑑』이라는 학술잡지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1928년에 나온 『圖解運氣學講義錄』에는 그의 사진이 나온다. 方冠을 쓰고 있고 온화한 눈빛에 정좌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선비로서의 풍모가 느껴진다. 그는 수 천년동안 내려온 민족의학의 전통이 일제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것에 대해 분개해 多作으로 한의학을 많이 알리고자 노력하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저술과 한의학학술잡지에 보이는 글 속에서는 전혀 일본적 요소가 발견되지 않고 전통의학에 대한 설명이 주류이다.

그는 運氣學에 뛰어났다. 運氣論은 조선후기의 의학자 尹東里(1680~?)가 나온 이후로 조선의학의 중요한 사조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의학의 전래와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그 명맥이 거의 끊기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金海秀는 평소에 運氣學에 대해 가졌던 지견을 『圖解運氣學講義錄』이라는 책으로 엮어서 출간하여 한국 고유의 운기이론의 정립에 힘썼다.

그가 논의하고 있는 運氣論은 五運六氣의 基礎理論으로부터 標本, 歲會, 南北政脈, 生成數, 六十年客氣旁通, 六病, 六脈, 五運藥名 등 임상적으로 유용한 것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이것은 이론을 실제와 구체적으로 연결코자하는 그의 노력의 일환이다.
『萬病萬藥』이라는 책은 상당히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먼저 앞부분에 “歷代醫學姓氏略述”이 나오는데, 이것은 역대의 의학자들을 나열하고 간략하게 설명을 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주제별로 의사의 종류를 聖賢醫學, 儒醫學, 明醫學, 世醫學, 德醫學, 禪仙道醫學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말미에는 許浚, 柳상, 康命吉, 李景華, 李獻吉, 丁若鏞, 李濟馬, 惠庵, 洪鍾哲, 崔奎憲, 朴準承, 金弘濟 등 조선후기부터 당시까지의 한국의 名醫들을 꼽아 놓고 있다.

이것은 조선의 의학이 독자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깨닫고 계승하자는 무언의 주장이 아닌가 한다. 나머지 부분은 전체적으로 雜病門, 婦人門, 小兒門 등 세 개의 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에는 구체적인 병증을 작은 소제목으로 굵고 큰 글씨로 기록하고 그 아래에 간단한 처방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처방들을 민간에서 가난한 民草들이 사용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각 처방들의 아래에 출전을 밝히고 있다는 점으로, 이를 통해 金海秀의 학자적 풍모를 엿볼 수 있다.

『醫方大要』는 醫書 가운데 요점이 되는 것들을 모아 놓은 그의 학술사상을 대변하는 책이다. 五運六氣에서부터 八綱, 疾病, 治法, 脈法, 處方 등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말미에는 “醫方綱要略選”이 나온다.
“醫方綱要”는 조선의 醫生들이 현대의약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편찬된 책이다. 이 책은 醫生試驗의 출제에 사용된 서적이었기에 醫生試驗에 합격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서적이었다.

金海秀는 “傳染病 法律上注意醫生試驗必要”라는 제하에 각종 전염병에 대한 서양의학적 지식을 “醫方綱要”를 요약하는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질병으로 腸窒扶斯, 實布질里亞, 虎列子, 黑死病, 赤痢, 麻拉里亞, 丹毒, 結核 등이다. 말미에는 毒藥, 劇藥, 劇性藥을 별도로 나열하고 있다.

1922년에는 해산된 全鮮醫會를 되살려 한의사들이 재단결하여 학문을 살리고자 東西醫學硏究會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단체에서는 東西醫學硏究會月報라는 학술잡지를 간행하기 시작하였고, 附屬醫學講習院을 세워 후진양성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金海秀는 동 학술지의 편찬에 적극 참여하여 학술논문을 여러 편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여러 호에 걸쳐 발표된 “衛生要訣”, 7호에 발표된 “로채論” 등의 글들은 그의 학술사상을 담고 있는 뛰어난 글들이다. “衛生要訣”에서는 서양식 衛生의 개념이 횡행한 당시에 이에 대응하여 衛生의 개념을 한의학적 養生이라는 입장에서 도가적 양생술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로채論”은 肺結核이 유행했던 당시에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이 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를 제시한 것이다.

東西醫學硏究會에서 운용한 附屬醫學講習院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강습원은 예과 2년, 본과 1년의 과정으로 운용되었는데 金永勳, 金東薰, 李承烈, 李仁宅, 李乙雨 등과 함께 강사로 참여하여 후진양성에 적극 노력한 것이다.
이렇듯 金海秀는 많은 저술과 논문 발표 그리고 한의학교육사업에의 헌신 등으로 한의학의 학술부흥에 힘쓴 醫人이었다.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