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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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보고
  • 승인 2005.08.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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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감독의 영화 <웰컴투 동막골>은 아름다운 판타지성 전쟁영화로 기억될만한 충분한 미덕들을 갖추고 있다. <연애의 목적>에서 퉁명스러우면서 매력적인 여선생역으로 눈길을 끌었던 강혜정은 이번 작품에선 어린아이와 같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 광녀 여일로 분해, 넉살좋은 강원도 사투리와 의표를 찌르는 뜬금없는 대사로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흡인해 들인다.

영화는 아름다운 마을 동막골에 우연한 계기로 남·북군이 들어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한강다리를 폭파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탈영한 표소위(신하균)는 산중에서 자살을 기도하다가 우연히 연락병 문상사를 만나 자살을 포기하고 동막골로 들어오게 된다.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쫓겨 도망치던 인민군 장교 리수화(정재영)는 두 명의 부하와 함께 뒤늦게 동막골을 찾아들게 된다. 이곳에는 이미 미군 전투기 조종사로 마을 인근에 불시착했던 스미스가 마을사람들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감독은, 동막골이라는 작은 가상공간에, 6.25 전쟁의 참전국인 남·북한과 미국의 병사들을 상징적으로 조우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예상되듯이, 남북의 병사들은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상대를 죽일 듯 으르렁대며 총구를 겨누고 대치한다. 그 와중에 마을 사람들은 인질로 잡히게 되고. 하지만, 양측의 이러한 불화와 대립은 마을사람들의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심성에 조금씩 긴장을 잃게 된다. 그러다 실수로 북한군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수류탄을 불발탄으로 오인한 표소위가 곡식창고에 던지는 순간, 창고는 폭발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옥수수 알갱이들은 팝콘으로 개화하며 飛下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만한 이 ‘팝콘 비’의 영상은, 남북간의 충돌과 대립이 화해로 반전하는 극점을 이룬다.

솔직히 이 부분과 뒤이어 전개되는 화해의 장면들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아주 감동적인 대목들이다. 하지만, 2시간이 넘게 계속되는 영화를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영상으로 이끌어가기에 감독의 역량과 노력이 부족했던 탓일까? 영화는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놀랍게도,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교육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남과 북의 대립이 화해로 전환되면서, 그 대척의 자리(갈등과 불화를 만들어내는 자리)에는 연합군이 전쟁의 수행자로서 부각된다. 한국과 미국의 연합군은 불시착한 스미스를 구출하기 위해 (동막골 인근에 대공사격부대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동막골을 공격하기로 결정하는데, 이 대목에서 감독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동막골을 사수하려는 민족 단일군과 동막골을 폭격하려는 연합군의 선악구도로 치환해 버린다.

이런 작위적 해석에 대한 민망함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였을까? 감독은 남북간 병사들의 대화를 통해 “이번 전쟁은 북이 남침한 것”이라는 양심고백으로, 6.25 전쟁의 역사성에 아직은 투철한 남측 관객들의 마음을 위무해 보려고 시도하지만, 그것이 깊이없는 립 서비스라는 사실은 뒤이어 연속되는 연합군측의 惡者的 모습의 지나친 부각 {동막골에 들어온 연합군이 무고한 마을 촌장을 잔인하게 구타하는 장면과 민족 단일군(?)을 엄청난 물량으로 융단폭격하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고 만다.

근년들어 남·북군의 모습을 영상화한 작품들을 보다보면, 늘 북한군 측의 의로움과 리더십, 화해주의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 눈길을 끄는 바 이번 작품 속의 남북군의 역할도 그 연장선 위에 설정된 것으로 보여진다. 2시간이 넘게 계속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젊은 관객들의 눈가에는 감동의 눈물들이 더러 보이긴 했지만, 고루한 보수주의자의 비판적 눈으로 봐서였는지 모르지만, 나의 마음에는 뭔가 쉽게 벗겨지지 않을 듯한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요즘 유행처럼 강조되는 민족주의에 대한 일방적 미화가 이북의 실체와 6.25라는 역사적 실상을 왜곡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그런 우려의 찜찜함 말이다.

명성환
서울 성동구 장수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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