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살고 싶은 곳과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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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살고 싶은 곳과 사는 곳
  • 승인 2023.06.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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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건강한 건물

어딘가로 이사를 하려 한다면 층수, 넓이, 구조, 채광, 화장실, 수압, 주차장 형태, 진입로, 복도형, 계단형, 대출, 곰팡이 등을 다 따져야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조건은 “입지”일지니, 필요하다면 “몸테크”(설비가 낡아 녹물이 나오는 집에서 견디며 재건축을 기다리거나, 대출과 전세를 끼고 산 집이 오를 때까지 본인은 실거주하지 못하고 더 열악한 집에서 견디는 식의 재테크 형태)도 견뎌낼지라-라는 것이 유튜브든 실제 부동산에서든 종종 들어온 이야기이다. 개원을 할 때도 강조되는 것은 입지이다. 상권 형태가 운영하고자 하는 한의원과 어울려야 한다. 코너 자리가 좋고 위치를 설명할 랜드마크가 있으면 아주 좋다. 영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부동산Real estate의 중요한 세 가지는 입지location, 입지location, 그리고 입지location라고. 건물 자체의 특성은 다음으로 밀리곤 한다.

조지프 앨런‧존 매컴버 지음, 이현주 옮김, 머스트리드북 펴냄
조지프 앨런‧존 매컴버 지음,
이현주 옮김, 머스트리드북 펴냄

이 책<건강한 건물>은 우리가 건물을 볼 때 간과되는 건강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로 90%라는 숫자를 제시한다. 우리는 하루 90%의 시간(북미와 유럽 기준)을 건물 안에서 보낸다. 기업체는 1%를 냉난방 같은 시설에, 10%를 건물 임대료에, 90%가까이를 사람의 인건비(일반적인 사무 업무를 기준으로 한 숫자로 보인다)로 사용한다. 사람들이 90%의 시간을 보내는 건물이 건강한 환경이 된다면 지출의 90%를 차지하는 인건비가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을 짓거나 입주, 혹은 운영할 때 건강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조지프 앨런은 본인이 직접 조사에 참여한, 레지오넬라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사례를 든다. 이 사례에서는 사망한 환자도 발생했고 병원은 발병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배상을 해야 했다. 공중보건 전문가인 저자는 재발을 막기 위해 2만 달러의 비용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뜻밖에도 병원 운영진은 이를 받아들이기 주저했다. 희생자들에게 배상할 수백만 달러는 보험이 되지만 추후 재발생을 막기 위한 건물의 리모델링 비용 2만 달러는 온전히 병원 예산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시설팀과 병원 전체 목표 사이의 불일치와 병원과 보험회사 사이의 이익의 불일치가 합리적인 해결을 가로막은 이런 문제는 병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자, 소유자, 개발자, 세입자는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센티브의 분산” 문제는 건강한 건물로 가는 길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런 인센티브의 분산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때 향상되는 인지능력의 향상과 병가의 감소, 그로 인한 생산성의 증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비용보다 크다는 계산을 제시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계산에 동의한다면 인센티브의 분산을 좁히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이렇게 “건강한 건물”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건강한 건물의 아홉 가지 기본 토대로 환기, 공기 질, 온열 건강성, 습도, 먼지와 해충, 안전과 보안, 수질, 소음과 음향, 조명과 전망을 제시하고 이 아홉 가지 조건에 대한 각각의 기준과 개선책, 권장 사항을 들고 있다.

과학자가 아닌 실무자들이 건물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접근가능한 언어로 실행가능한 권장사항을 제시하겠다는 책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읽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책은 아니다. 실내 환경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인데 건축 폐기물에 대한 얘기는 왜 꺼냈을까, 구체적으로 제시된 경제적 평가는 과연 설득력이 있는 계산일까, 병가를 내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 실정에서도 적용될 내용일까, 백화점이나 식당, 입원을 하지 않는 의원급 의료기관 같은 상업 공간에 대한 내용이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등등 읽어가는 걸음의 발목을 잡는 의문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기억과 판단에 새로운 태그를 붙여준다. “30대가 되면 화장실이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쓴 29살 때의 일기에는 <온열 건강성>, 열 수 없는 통창유리로 된 치료실이 여름에는 온실이 되고 블라인드와 필터에서 끊임없이 먼지를 제거해야 했던 기억에는 <환기>, <공기 질>, <온열 건강성>이 붙는다. 내가 다음에 살 공간은 어떤 태그를 붙이게 될런가.

김린애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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