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인간의 오감 너머에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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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인간의 오감 너머에 있는 세상
  • 승인 2023.05.2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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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펴냄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별칭에 걸맞게 아침 5시면 사방이 환히 밝아지고, 햇볕은 기분 좋게 따사로우며, 주위는 꽃향기와 연둣빛 초목의 싱그러움이 넘실대는 등 야외활동에 최적의 시기이지요. 상춘(賞春) 대열에는 무조건 합류해야 하기에(^^*) 며칠 전 오전 짬을 내어 아내와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도중에 벤치에 앉아 준비해간 커피와 스콘을 먹는데, 어디선가 비둘기가 날아와 발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쪼아 먹더군요.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저 작은 눈으로 어쩜 그리 귀신같이 찾아 먹을까?”라며 감탄했는데, 저는 마음속으로 “이번 추천도서로 『이토록 굉장한 세계(An Immense World)』 당첨!”이라고 외쳤습니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는 지구촌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동물들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감각을 소개한 책입니다. 사람들은, 부처님 설법에 따르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으로 인식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체형기상(軆形氣像)·용모사기(軆形氣像)·성질재간(性質材幹) 등을 갖춘 모우나개린(毛羽裸介鱗)의 동물들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할까요? 저자는 서문에서 인간을 포함하여 코끼리·생쥐·유럽울새·올빼미·박쥐·거미·모기·뒤영벌 등 모두 아홉 종의 동물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각각이 지각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삼라만상의 본모습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감각주체가 필터링한 주관적 세계일뿐이라는 거지요.

지은이는 퓰리처상을 비롯하여 온갖 상을 휩쓴 유명 과학 블로거 에드 용(Ed Yong)입니다. 그는 생물학·신경과학·심리학 등 과학 관련 여러 주제를 깊이 있게 파헤친 자신의 블로그(‘Not Exactly Rocket Science’)로 10여 년 전부터 ‘과학 저널리즘의 미래’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7년 전 미생물의 세계를 탐사한 첫 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I Contain Multitudes)』로도 각종 매체로부터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라는 말이겠죠?

책은 인본주의적 전통 분류방식인 시청후미촉(視聽嗅味觸) 대신, 지구상의 뭇 생명체들이 감각 대상으로 삼는 자극(냄새·빛·색깔·통증·열·소리·표면 진동·전기장·자기장 등)을 소제목으로 삼은 모두 13장으로 구성됩니다.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하여 인간의 오감 너머에 존재하는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죠. 사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지구에 있는 수십억 종의 상이한 동물들의 ‘환경세계’ - 1909년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이 정의한 개념으로 동물이 감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지각적 세계 – 는 각각 다르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오감 너머에 존재하는 신묘한 세계로 감각이 황홀하게 확장되는 느낌은 직접 읽어봐야만 체험할 겁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공간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함께 살면서도 어쩜 이리 몰지각할까 경악할 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둬서인지, 인면수심(人面獸心)일지라도 개의치 않고 중생(衆生) 구제를 서원하는 보살(菩薩)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궁금합니다. 확실히 범인(凡人)들과는 환경세계 자체가 다르시겠지요?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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