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보진료수가삭감, 이렇게 대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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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보진료수가삭감, 이렇게 대응해보자
  • 승인 2023.05.1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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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규

장덕규

mjmedi@mjmedi.com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파트너변호사

로크와 몽테스키외가 권력 분립의 원리를 주창한 이래로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민주주의 국가의 진보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적절한 견제는 균형을 낳고 균형은 사회적 안정과 발전의 토대를 제공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가 사회 전체의 유지 원리로 기능하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건강보험의 영역에서도 직장/지역 조합이 통합되어 거대한 단일 보험자(국민건강보험공단)가 등장하자, 이를 견제하라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러한 심평원이 고유의 업무를 벗어난 특정 영역, 즉 자동차보험의 심사 업무 영역에서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동차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자동차사고 환자의 진료에 있어 자동차보험사가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한 경우 반드시 심평원에만 진료수가를 청구해야한다(자배법 시행규칙 제6조의 2). 진료수가 심사를 청구받은 심평원은 의료기관의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이하 ‘자보수가’) 청구가 기준에 적합한지를 심사하여야 하는데(자배법 시행규칙 제6조의 3), 이 경우 심평원은 청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소속 직원이 의료기관 현지를 방문하여 조사를 실시할 수도 있다(같은 조 제2항).

본디 이러한 취지의 조항은 행정법 체계에서는 아주 흔한 것이다. 행정청은 법정 소관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행정조사기본법에는 ‘법령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중복실시해서는 아니되며, 조서를 작성하고 미리 조사를 통보’하여야 하는 등 조사를 받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적 안전장치가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안전장치는 행정청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정조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지키지 않고 위법·부당하게 실시된 행정조사는 법원이 추후 이어진 행정처분을 취소해 버리는 방법으로 다시 견제할 수 있다.(이러한 이유로 복지부나 공단의 위법한 현지조사 이후 내려진 업무정지 처분이나 환수처분은 그 자체로 바로 취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심평원은 명목상으로는 공공기관이지만, 자동차보험 심사업무를 실시할 때는 행정청이 아니다. 애당초 자동차보험 심사업무는 민간기업인 자동차보험사의 업무일 뿐인바, 이를 위탁받았다고 하여 갑자기 심평원이 행정적인 권한을 휘두를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심평원의 자보심사는 보험사와 심평원 간 위탁계약에 따른 사적 업무로 사법(私法)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서, 행정권한의 위임·위탁이 아니고, 심평원의 심사결과 통보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6. 9. 30. 선고 2016두41569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구조는 역설적이게도 심평원의 현지심사를 그 어떤 행정적 방법을 통해서도 견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민간기업의 업무일 뿐이니 현지심사를 한다 한들 행정조사가 될 수 없으며, 아무리 조사가 위법·부당해도 법원에 심사결과를 취소해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당·강압적인 조사가 이어진다면 조사를 거부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 십중팔구는 심사자료 미비로 삭감한다는 통보를 받아들 뿐이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은 삭감된 자보진료수가를 보험사에 직접 소송을 통해 청구하는 것만 남는데, 이마저도 이의제기 - 분쟁심사위원회로 이어지는 절차 및 최종 30일 이내에 소송 제기가 없을 경우 합의가 간주되어 버리는 자배법 규정(제19조, 제21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심평원은 행정조사가 아니라는 틀 안에서 아무런 기준과 규제도 없는 현지심사를 하고, 보험사는 분심위를 다녀오고 3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합의가 간주되어 버린다는 법률 조항 뒤에 숨어서 진료비 지급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영역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현지심사를 당하는 의료기관의 경우에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시행규칙은 그 자체로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는데, 시행규칙에 근거한 집행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구제절차가 없는 경우에는 시행규칙 자체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헌법재판소 2001. 4. 26. 선고 2000헌마372)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배법 시행규칙에 근거한 현지심사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구제절차가 없는바, 현지심사를 당한 의료기관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이는 제도 자체에 대한 다툼이니 협회나 단체가 나서서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소도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협박으로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형법 제324조 강요죄).

법령상 부여된 권한범위와 적법절차 등을 준수하지 않고, 해악을 고지하거나 부당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위법적인 현지조사가 실시된 경우라면 CCTV나 진술서 등의 증거를 확보해 두고 고소라는 절차를 통해 위법한 조사행태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보험사에 직접 자보진료수가 지급청구소송을 하면서, 소 제기 시점을 달리 하거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해보는 방법이 있겠다.

대부분 의료기관의 경우 각각의 삭감액이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액수가 적은데, 그마저도 분심위까지 다녀오면 통보를 받는 날이 제각각이라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법무법인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아예 제소 시점을 달리하거나, 분심위 통보를 받은 후 30일이 지난 삭감분을 모두 청구하면서 자배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제기할 경우 합의를 간주해 버리는 자배법 규정들을 무력화시킬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와 같이 아예 소 제기도, 재산권 행사도 강력하게 제한하는 법률조항은 다른 입법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퉈볼 여지가 있다)

민주사회는 견제와 균형으로 진보해 왔고, 공고해 보였던 구조도 개인들의 끊임없는 시도가 이어질 때 결국 깨질 수 있었다. 불필요한 치료를 하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의료기관의 경우에까지 권리 행사가 보장되어서는 안되겠지만, 환자의 요구에 따라 정당한 진료를 한 의료기관이 그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라면, 반드시 한번 법정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려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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