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남자사용설명서’에 바치는 ‘여래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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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남자사용설명서’에 바치는 ‘여래이즘’
  • 승인 2023.05.19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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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킬링로맨스
감독: 이원석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 등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 등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 하나 쯤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그것이 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였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에 평론가들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고려하면 대단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흥행이 실패했던 이유는 영화 자체가 좀 괴상망측한 B급감성인 것도 있을 것이고, 경쟁작이 ‘베를린’, ‘신세계’, ‘7번방의 선물’이었던 이유도 있다.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는 한국영화, 적어도 상업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B급 정서의 작품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싸구려 외화,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웃긴 대사, 생활감이 느껴지는 꼼꼼한 묘사, 개그의 결정적인 포인트로 사용되는 음악까지 모든 조합이 정신 나가게 웃기다. 심지어 이 작품의 대단한 점은 직장 내 성차별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남자감독이 로맨틱코미디로 풀어내려 했음에도 어색하지 않다는 부분이다. 물론 취향이 맞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이원석 감독의 ‘킬링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의 화법을 그대로 풀어낸 작품이다. 왕년의 탑스타였던 황여래가 꽐라섬 출신의 부자인 존 나(John Na)와 결혼해서 살았는데, 우연히 만난 황여래의 팬인 ‘여래바래’ 김범우의 도움을 받아 존 나에게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놉시스부터가 황당한데, 이 시놉시스 속 남편인 존 나가 가정폭력범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는 클래식음악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중가요를 사용해서 웃길 줄 아는 것도 여전하다.

굳이 차이를 비교하자면 ‘킬링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보다는 힘을 빼고, 조금 더 대중적인 화법으로 전환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전작에서의 개그코드를 사랑했던 팬에게는 약간은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킬링로맨스’의 마지막 결투장면을 보면 본질은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킬링로맨스’가 입소문을 타고 뒷심을 발휘했다는 소식이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물론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못 넘긴 영화이기는 하지만 한 때 반응이 나름 좋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원석 감독의 영화는 여전히 이상한데, 관객의 반응은 왜 (조금이지만)다를까? 전에도 이 정도 반응은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뜩 깨달음을 얻었다. 이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영화는 놀랍게도 ‘남들에게는 이상하고, 화가 날 정도로 무가치한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일 수 있다’는 의외로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킬링로맨스’를 즐거워하고, 또 과거에 ‘남자사용설명서’를 좋아했던 이원석 감독 본인과 관객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킬링로맨스’의 뒤늦은 붐은 과거 ‘남자사용설명서’를 좋아했단 괴상망측한 취향의 ‘원석바래’가 일으킨 반란이었던 셈이다.

이것이 필자가 ‘킬링로맨스’를 나쁘게 평할 수 없는 이유다. 마음 한 켠에서는 ‘남자사용설명서’처럼 더 이상하게 밀어붙였어야했다고 생각하지만, ‘킬링로맨스’라는 영화 자체가 한 편의 ‘여래이즘’이라고 하니,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박수를 치며 ‘여래이즘’의 화음을 쌓을 뿐이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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