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27)Oh My God!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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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27)Oh My God! 나무아미타불
  • 승인 2023.04.07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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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가 있다. 어떤 말도 하기 싫고, 의욕도 없을 때 멍하게 있다 보면 문득 굉장히 이질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조금만 더 버티자.’ ‘이렇게 고생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처럼 완전히 다른 한 생각이 어둠의 공간을 뚫고 나에게 도달하는 순간이다. 이질적인 이 생각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분명한 점은 내 생각의 메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멍하게 있다 보면 떠오르는 위로와 용기의 생각들이나 인생을 바꿀 만큼 결정적 아이디어들이 존재하는 이곳, 나는 종종 이곳으로 들어가 의지하고 싶다.

불교에서 자주 쓰는 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원효대사가 만든 불교의 핵심이 담긴 염불이다. 염불(念佛)의 염(念)을 풀어보면 지금(今)에 마음(心)을 두게 한다는 뜻이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독송하면 후회스런 과거와 걱정으로 가득한 미래로 가 있던 정신이 오롯이 현재로 돌아오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무(南無)’라는 말은 돌아가 의지하다(歸依:귀의)‘라는 뜻이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석가모니를 비롯한 현생에 나타난 여러 부처님들의 근원이자 신(神)과 같은 존재다. 세상을 보고 들어 인간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아미타불께 돌아가 의지하겠다는 말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다.

우리는 누구나 결국엔 부처가 될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부처(自性佛)의 자리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지하라는 말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다. 물론 우리 안에 부처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고 윤회를 거쳐야 한다. 윤회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과 고통이 내 안의 부처를 가리고 있는 업(業)을 소멸시켜주고 그 업(業)이 다 사라지면 부처가 된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생물도, 온갖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도, 혹은 억울한 고통이나 병마(病魔)를 겪고 있다 해도 이 모든 과정은 부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이 다른 종교들과 다른 점이다.

내 안에 있는 부처(自性佛)의 자리로 돌아가 의지하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면, 기독교에서는 성령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삶을 살라고 했다. 나의 마음 밖에 있는 외부인으로서의 예수님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항상 살아있는 예수님을 느끼며 그분에게 모든 염려를 맡기고 쉬라 했다.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들어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항상 마음으로 예수님을 느끼며 성령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이 예수님의 참뜻이라 짐작한다. 그렇다면 복잡할 것이 없다. 내 안의 양심을 항상 성령처럼 밝게 유지하며, 그 양심에 어긋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된다. 이처럼 우리가 의지하고 기댈 믿음이 존재하는 그곳은 이름과 가는 길이 다를 뿐 향하는 곳은 동일하다. 공자는 덕(德)이라 했고, 석가모니는 법(法)이라 했으며 노자는 도(道), 예수님은 성령(聖靈)이라 했을 뿐이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서 그곳에서 멀어져 어두워졌을 뿐 그곳은 본디 그 자리에 그대로 밝게 존재하고 있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대한 생각과 많이 닮아 있다. 그는 아름다운 형상은 대리석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형상을 가리고 있는 부분을 떼어내기만 하면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이 밖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래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피에타>를 조각할 때도 이미 그의 머릿속엔 <피에타>가 존재했고 그저 돌을 떼어낸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가 위로받고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마음속 그곳도 마치 이런 느낌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의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을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그 곳이 바로 우리가 돌아가 온전히 쉬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미 온전하기에, 그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우리의 밖이 아닌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무언가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끌 하나 들고 피에타를 조각하는 미켈란젤로처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 갈 때 우리 안에 있는 진짜 나와 만날 수 있다. 덜어내야 할 것(業)을 덜어낼수록 가장 소중한 곳에 가까워진다. 힘들수록 그곳을 믿고 의지해야 힘이 난다. 그곳에 삶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지혜와 힘이 존재한다. 그곳이 꼭 종교적인 대상이 아니어도 괜찮다.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힘이 되는 모든 존재, 장소, 기억, 사람은 모두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 된다. 나를 내려놓고 내안의 그곳을 믿을 수 있는 힘이 강할수록 사소한 걱정과 불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의 자리는 줄어든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의 일과 일상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어떤 종교든지 믿음의 힘이 강한 분들이 자신의 일도 망설임 없이 잘 해나가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믿음의 자리가 절대 밖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 안에 원래 존재하던 바로 그곳,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바로 그곳이 우리가 믿고 기댈 곳이다. 내가 돌아가 의지할 곳을 떠올리며 종교학 교수 폴 필리히의 말을 전한다.

“신은 하나의 존재(A being)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Ground of Being)이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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