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다음 차례는 돌아오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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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다음 차례는 돌아오지 않길
  • 승인 2023.04.07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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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효원

배효원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다음 소희
감독: 정주리출연: 김시은, 배두나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사회고발 영화는 여러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흥행하기도 힘들어서 제작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런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는 이유는 누군가의 사명감, 개선 의지, 정의감 때문일 것이다. 정주리 감독은 처음에는 사건을 파헤치는 장르 영화로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뒤, 단순히 상업적 용도로 소모되는 소재가 아닌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방향을 새로 잡게 되었다.

전국의 특성화고는 3학년이 되면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중소기업에 취업시키고, 취업률로 교육청의 평가를 받아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 중 하나인 전주의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18살 소희는 밝고 당찬 성격으로 학교 선생님께 좋은 평가를 받으며 통신사 하청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대기업의 하청이니 대기업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기대를 품고 출근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최소 임금도 되지 않는 급여를 받고, 회사에서 부품처럼 직원들을 다루는 현실을 겪으며 소희는 점차 피폐해져 간다. 그러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 유진은 이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며 사건을 끝까지 파고들어 간다.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구조에 가로막혀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소희는 600명이 넘는 콜센터의 현장실습생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전국의 고교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수치와 실적으로 모든 평가가 이루어지는 기업의 구조는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돼 학생들은 취업률 목표치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했다. 처음에는 영화의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현실이 계속된다면 끊임없이 다음 소희가 나타날 것이라는 걸.

의사 결정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 구조에 무디어져 문제 자체를 회피하고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냐며 적당히 하라고 오히려 화를 낸다. 유진에게 몰입되어 같이 화를 내다보면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현실을 폭로해준 것만으로도 영화는 할 일을 다한 듯하지만, 내용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알려지지 않은 김시은 배우가 주연을 맡아 실제 존재하는 고등학생 소희로 현실감 있는 몰입이 가능했고, 후반부 배두나 배우로 주인공이 바뀌면서 특유의 집중력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감독은 상업영화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봐야 할 영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삶이 바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 영화 한 편 본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가슴의 울림이 쌓이다 보면 하나둘씩 언젠가는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배효원 / 제주경희미르애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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