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봄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상태바
[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봄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승인 2023.04.07 0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죽음의 역사

  봄꽃들이 지천입니다. 고개를 살짝 들면 산수유·살구·매화·목련·벚꽃이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아래로 숙이면 민들레·수선화가 살포시 미소를 내비치며, 좌우로 돌리면 개나리·진달래가 화려한 군무를 펼칩니다. 이에 질 새라 사이사이 유채·튤립·조팝나무 등도 노랗게·빨갛게·하얗게 자신을 뽐내고 있지요. 마치 춘삼월 ‘발진(發陳)’의 진면목은 눈연(嫩軟)한 연둣빛 새싹이 앙증맞게 움틀 때보다는, 탐스런 형형색색 꽃망울이 수줍게 터질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기발랄한 봄기운에 걸맞게 이번에는 『죽음의 역사(This Mortal Coil)』를 소개합니다. 시의(時宜)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찬찬히 톺아보려는 까닭은 삶을 더욱 활기차게 살아내기 위함 아니겠어요?

 

앤드루 도이그 지음, 석혜미 옮김, 브론스테인 펴냄

 『죽음의 역사』는 인류의 시대별 사망원인 변천사를 다룬 책입니다. 지구상에 등장한 현생 인류가 고대·중세·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맞이했던 죽음의 양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각 시대별 죽음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보는 것이지요. 물론 대강의 흐름은 짐작하는바 그대로입니다. 기나긴 전쟁·기아·영양실조·전염병의 시대를 지나, 19세기 후반부터는 암·뇌졸중·심부전이 주된 사망원인으로 등장했지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저승길로 인도한 특정 원인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역사적 이야기의 속살까지는 잘 모르잖아요?

  지은이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생화학과 교수 앤드루 도이그 (Andrew Doig)입니다. 그는 14세 때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에서 읽은 몇 문장을 생각의 씨앗으로 삼아 자신의 이 첫 작품을 펴냈다던데, 확실히 오랜 시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책은 14세기 흑사병이 몰아닥친 이탈리아 중부 도시 시에나의 재앙을 서론으로 삼아, 셰익스피어 비극처럼 5막으로 구성한 본론에서 주된 사망원인과 극복과정을 낱낱이 살펴보고, 희망찬 미래에 물음표를 붙여 결론으로 마무리 짖는 방식입니다. 모든 부분이 흥미로웠지만, 저는 리버풀의 빈민층이 세균이 득실거리는 옷과 이불을 빨 수 있게 최초의 세탁소를 연 아일랜드 이민자 키티 윌킬슨(Kitty wilkinson), 레몬즙이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스코틀랜드 의사 제임스 린드(James Lind),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라는 책을 써서 안전장치와 제도개선의 시발점을 일으킨 미국 변호사 랄프 네이더(Ralph Nader) 등의 이야기가 제일 좋더군요. 16∼40세의 젊은 층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므로, 많은 젊은이들이 매일 거울을 보며 “이 사람이 나를 죽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상상해보라는 글귀를 접할 때엔 피식 웃음도 터트렸습니다.

  저자는 책 말미 「감사의 말」에서, 방대한 자료를 찾아본 결과 인류의 주된 사망원인을 해결하여 진보가 일어났을 때는, 의료가 아니라 법률·정책·경제학·통계의 발전과 더불어 의욕 있는 사람이 사회의 저항을 이겨냈을 때라고 역설합니다. 부록으로 실린 생명표를 보니 제 기대수명은 앞으로 24∼25년이던데, 여생을 무탈하게 보내기 위해서도 정치가 좀 올바르게 행해지면 좋겠습니다. 뉴스 매체를 접할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화병이 생길 정도이니….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