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짜 공진단 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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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짜 공진단 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벗다
  • 승인 2023.03.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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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김민서

mjmedi@mjmedi.com


사향 지표물질 탐색연구 첫 번째 이야기
김민서
한의사

1. 사향과 muscone

1) 사향

사향노루의 배꼽과 생식기 사이에 있는 향낭을 채취하면 구린 냄새가 난다. 건조해서 불쾌한 향을 잘 날리면 비로소 사람 체취와 비슷한, 중독성 강한 향이 남게 되는데 우리가 머스크 향이라고 하면 익숙하게 여기는 바로 그것이다. 수컷 사향노루가 교미 시기에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풍기는 페로몬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사향노루는 한국, 중국, 중앙아시아, 사할린, 시베리아, 몽고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달가슴곰, 산양 등을 포함한 1급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사향의 가치는 약제로서도, 향료의 베이스로도 높아 무분별한 체취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 생태계 파괴로 이어져 전 세계적으로 ‘CITES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의거 연간 거래량에 제한을 두고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위, 변조의 우려를 고려해 수입, 제조하는 경우 그 내역을 식약청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장치도 마련해 두었다.

 

2) 합성 엘 무스콘의 개발

합성 머스크는 우연히 발견되었다. 안정한 폭발물을 얻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알버트 바우어(Albert Baur)는 원하는 화합물 대신 강한 머스크 향 성분을 찾아내게 되면서, 머스크 바우어라는 이름을 붙여 천연 사향의 반값으로 향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후 이어진 연구에서 니트로머스크(Nitromusk) 계열의 합성 머스크가 발견되었다. 머스크 자일렌(Musk Xylene)은 비교적 거칠고 싸구려 느낌의 냄새로 비누와 세제에, 머스크 케톤(Musk ketone)은 0.1 ng만으로도 강력한 향을 뿜어 샤넬 No.5의 대표 향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신경독성, 광(光) 독성, 체내 농축의 위험, 낮은 생분해의 특징으로 인해 결국은 사용이 금지되었다.

1906년 하인리히 왈바움 (Heinrich Walbaum)은 천연 사향에서 주요한 머스크 냄새 물질을 찾았는데, 이 케톤 구조를 최초로 합성하여 d,l-muscone 이라 불리는 물질을 얻게 되었다. 이 분자 구조를 추적하면서 결국 무스콘을 대체할 수 있는 합성법은 발전을 거듭하였고 저렴하고 긴 향취를 풍기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를 가진 무스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원료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합성 엘-무스콘(L-muscone)은 1951년 Stallberg- Stenhagen등에 의하여 최초로 연구가 시작되어, 합성에 성공하였으나 그 방법이 까다롭고 수율이 낮아 상용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후 중국,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합성 엘-무스콘과 인공 사향을 제조하는 기술을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시켜 희소가치가 높은 천연사향을 대체할 물질에 관한 연구 결과를 앞다투어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제약 시장에서도 합성 엘-무스콘 개발의 성과를 보여 상용화되었다. 합성 엘-무스콘의 개발은 우황청심환과 공진단 시장을 확대했고,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d,l-muscone을 원료로 하여 엘-무스콘만 단독으로 분리 정제하는 기술을 통해 천연 사향의 25-30%의 가격이지만 고수율, 고순도의 엘 무스콘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2. 사향 지표 물질 탐색 연구는 사향의 품질 척도인 엘-무스콘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1) 엘 무스콘이 사향 지표 물질로 선정된 이유

사향을 대표하는 물질이 무스콘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천연 사향이 그 성분을 분석하기 힘들 정도로 단단한 동물성 수지질(樹脂質)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밀랍이나 나무의 수액처럼 당단백과 다당류가 혼합된 끈적한 물질들이 엉켜 있어 주정에도, 물에도 잘 용해되지 않는다.

에테르 등의 용매를 통해 확인된 화학 성분은 주로 친유성(insoluble) 즉, 물에 잘 녹지 않고 휘발되는 특징을 지닌 거대고리 케톤, 알칼로이드 그리고 스테로이드 등이 주로 알려졌다. 무스콘은 이 중에서 거대고리 케톤(휘발성 향기 성분)의 화학구조를 가진다. 전체 사향 성분의 0.5-2% 정도를 차지하나 사향 특유의 향이나, 여러 실험에서 입증된 중추신경계 및 심혈관계에 작용하는 결과에서 사향의 효능이 곧 무스콘의 효과임이 공식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스콘은 전체 사향 성분 중 0.5~2%밖에 안 되므로 무스콘의 이성질체인 엘-무스콘이 사향의 전체 효능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엘-무스콘이 과연 사향이 가지는 약리학적 의미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 물질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2) 방향성 화합물이 휘발된 뒤에도 약효를 유지할 수 있는가?

방향성 화합물은 휘발되는 특징이 있어 향기 나는 물질(사향에는 엘-무스콘 말고도 8종의 향기 성분이 존재한다)이 약효의 지표가 된다면 공진단이 제조된 일정 기간 이후 엘-무스콘이 휘발되어 검출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도 약으로서의 의미와 그 효과가 유지되는 것은 사향의 다른 성분에 의한 것이라는 가정을 충분히 세울 수 있다.

3) 엘-무스콘에 의해 가짜 공진단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가짜 공진단 사건이 방송 매체를 통해 보도될 때마다 임상 한의사들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인공 합성된 엘-무스콘이 천연 사향과 유사한 약리 효능이 나타난다는 실험 결과들은 엘 무스콘이 사향의 지표성분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가짜 공진단 사건에 휘말리게 된 빌미가 되었다. 논리적으로 잘못된 점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은 미진한 연구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휘발되는 엘-무스콘 성분을 일정 농도로 오래 유지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어서, 품질 기준을 맞추기 위해 합성 엘-무스콘의 사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으며 합성 엘-무스콘과 천연 사향의 변별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엘 무스콘이 사향의 지표 물질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동서비교한의학회 중앙연구소에서도 본격적으로 사향 지표 물질 탐색연구가 시작되었다.

수용화된 사향을 통해 재검증 해 보았을 때, 항염증 효능을 나타내는 사향의 농도는 400μg/mL이고, 해당 농도에서 엘-무스콘의 농도는 0.0238μg/mL 즉, 0.05%의 비율을 차지하였다. 엘-무스콘 단독으로 같은 효능을 나타내는 농도는 24μg/mL 이상으로 이는 대략 1000배의 사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또한, Long-yun Zhou, et al.(2020) 연구의 결과값으로 유추해 본다면 무스콘의 항염증 효능은 60kg 성인에게 식약처 기준 사향 약 1g을 하루에 한 번, 4주간 복강 내 투여 시 나타난다. 현재 유통되는 사향은 복강 내 투여가 불가능하며 무스콘의 휘발성 특성을 감안한다면 경구 투여로는 훨씬 더 많은 양의 사향이 필요하다.

이처럼 엘 무스콘의 항염증 효능에 관한 선행 연구 결과는 임상에서 적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결과들로 엘 무스콘이 지표 물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사향의 항염증 효과를 나타내는 사향의 단백질 성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지표 물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합성 엘-무스콘의 개발 후 분자 구조식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엘-무스콘이 사향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이 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엘-무스콘이 가짜 공진단의 오명을 씌우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이번 연구는 적어도 ‘가짜’의 억울한 누명을 반복하지 않을 근거를 제시함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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