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8) 전문가적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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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8) 전문가적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 지키기
  • 승인 2023.02.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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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

남지영

mjmedi@mjmedi.com


요즘 현역 변호사가 쓴 글이 이슈다.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개인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정말 많이 침범되고 있다는 글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참 안타깝기도 하고 감정이입도 많이 되었다.

한의사로 살면서 보람된 일들이 자주 생긴다. 침치료 이후 허리가 펴졌다, 항암치료 후 체력이 저하되었었는데 한약을 복용하면서 체력이 회복되었다, 오래된 관절통으로 인해 간단한 보행도 어려운 경우였는데 침치료를 받으며 빠른 걷기가 가능해졌다, 우유는 커녕 요거트도 소화가 어려웠는데 한의원 치료 이후 유제품 섭취가 자유롭다고 하신다는 등등의 이야기들은 이 글을 보고 있는 한의사들에게 아주 흔한 내용일 것이다.

대부분 이렇게 뿌듯한 경우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종종 생긴다. 사적인 자리에서 “맥 좀 봐 주세요”라며 손을 불쑥 내미는 경우를 못 겪은 한의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지인이 전화를 해서 가족이 통풍 진단을 받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문의를 했다. 침치료로 통증컨트롤을 하면서 한약으로 체질개선을 하고 식이요법을 통해 염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자세한 것은 정확히 진찰을 해 봐야겠지만 전화상으로 파악했을 때는 주 2회 정도 침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댁에서 우리 한의원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거리니까 혹시 여의치 않으면 댁 근처 한의원을 소개해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이 분은 “몇 년 전에 제가 갑자기 무릎이 아팠는데 침 한 번 맞고 다 나았어요. 그 한의원에서 딱 한 번 침을 맞았는데 다 나았어요”라는 말씀과 “아는 사람이 통풍으로 병원에서 양약을 계속 먹는데 치료가 잘 안 되고 몇 년 동안 고생을 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통풍은 혈액 내의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결정이 관절과 그 주변에 침착되는 질환이며 하루 이틀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악화요인이 누적되었거나 체질적 소인이 있어 발생한다. 지인에게 그 부분을 설명하면서 쉽게 말해 혈액이 탁하다던지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던지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말씀드렸지만, 그 설명이 어디까지 가닿았는지는 모르겠다. 꼭 필요한 내용을 다 전달했지만 이 분과 가족분들의 건강이 실제로 좋아질지 어쩔지 신경이 쓰인다. 일단 가족분과 상의해서 집 근처 한의원을 소개받을지 필자의 한의원으로 오실지 정한 다음 연락하시기로 했지만 어쩐지 나는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지식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달 이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보람된 것 아닌가. 어디를 가시든 어떤 치료를 받으시든간에 서둘러 치료를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게 내 희망사항이었다. 지식전달 이후 상대방의 행동은 그 사람의 몫이며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내려놓는 것이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이 지인분은 그 뒤 필자의 한의원으로 방문하셔서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셨고 호전중이어 다행이다.

어쩌면 어떤 이들은 “그렇게 신경쓰고 마음에 둘 거면 왜 사적으로 전화를 받아서 치료적 설명을 했냐”라고 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변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은 인간으로 살면서 꼭 필요한 부분이므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과 경계선을 지키면서 상대방에게도 예의있게 행동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나가는 게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인 듯도 하다.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 대표원장,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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