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화지진 – 성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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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화지진 – 성공의 조건
  • 승인 2023.01.20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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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새해에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작년과는 다른 내가 되기를 소망하며 운동을 시작하거나, 공부를 시작하거나, 금연이나 금주 결심을 세우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을 언제까지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면 서쪽으로 진다. 태양과 지구의 움직임이 밝혀지기 전에도 사람들은 태양은 겉보기로는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별들과는 달리 무조건 ‘직진’한다고 믿었다. 주역에도 이런 태양의 모습을 닮은 괘가 있다.

화지진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彖曰 晉 進也 明出地上 順而麗乎大明 柔進而上行 是以 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也

‘편안케 하는 제후’란 왕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가 다스릴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말을 많이 주고, 몇 달이 가도 한번 보기 어려운 왕의 용안을 하루에 세 번이나 보여 준다. 제후가 기대한 바를 충족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初六 晉如摧如 貞吉 罔孚裕 无咎

뭐든 시작이 어렵다. 그것도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잘할 리가 없다. 그러니 상전에 晉如摧如 獨行正也라고 했다. 혼자 바른 것을 행하려고 하니 때론 반대에도 부딪치고 호응을 얻기도 한다. 무엇보다 초육이 하려는 일은 未受命也,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초육이 있는 곳은 원래 양의 자리로 제 자리도 아니다. 보통 이런 자리의 힘도 없는 음효가 움직이면 흉하다고 봐야 맞을 텐데, 바르게 하면 길하고 믿음을 얻지 못해도 허물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초육이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임을, 그리하여 자기가 움직이는 것이 정당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육은 비록 양의 자리에 있는 음이지만 자기 짝인 구사와 음양응을 이룬다. 저 멀리 있는 목표에 닿을 것을, 그 노력의 결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六二 晉如愁如 貞吉 受玆介福于其王母

육이는 음이 음의 자리에 있지만 자기 짝인 육오와 음양응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러니 사실 가 봐도 별 뾰족한 수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 육이는 갈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 올바름을 증명하면 길하다. 자기 짝인 육오가 비록 돌아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수고와 덕을 알아줄 사람이 분명히 있다.

六三 衆允 悔亡

육삼은 양의 자리에 있는 음이다.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자리에 있는데 음효이니 힘이 없다. 그러나 육삼이 여기서 포기하면 저 멀리에 있는 초육이나 내괘의 중심을 잡느라 고심하는 육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육삼은 자기 짝인 상구와 음양응을 이루긴 하지만 상구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육삼은 그 어려운 자기 짝을 만나 설득하러 가야 한다. 그것이 비록 길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결과가 보장되지 않을지라도 해야 하는 일을 한 것이니 후회할 것도 없다.

九四 晉如鼫鼠 貞厲

구사는 음의 자리에 있는 양이다. 거기에 바로 옆에는 음효인 육오와 육삼이 있다. 다람쥐는 재주가 있지만 그건 딱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만큼의 재주다. 다람쥐는 경계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으며 독립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어 다른 것들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굳건하게 서서 자기 짝인 초육을 이끌어줘야 하는 위치에서 자기 앞가림도 바쁜 상황이다. 그러니 초육이 ‘홀로 바른 것을 행하게’ 되는 것이고, 구사 역시 그쪽으로 섣불리 눈을 돌리다가는 자기가 먼저 위험해질 수 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원대한 꿈을 꾸거나 역량이 부족한 일에 함부로 덤비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六五 悔亡 失得勿恤 往 吉 无不利

육오는 양의 자리에 있는 음이다. 게다가 제 짝인 육이와 음양응도 되지 않는다. 위아래에는 양효가 있어 언제든 내 자리를 넘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약한들 그 자리는 왕좌이다. 두려움에 떨며 가만히 있어도, 먼저 치고 나가도 그 자리는 여전히 육오의 것이다. 음효인 육오에겐 타오르는 불과 같은 위아래의 양효는 자기와 비교할 수도 없는 밝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양효들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겉보기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불은 태울 것이 없으면 꺼질 수밖에 없다. 불을 살아있게 하는 심지의 역할을 하는 육오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육오가 그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을 떨쳐야 내괘의 음효들을 이끌고 외괘의 양효들과 아울러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上九 晉其角 維用伐邑 厲吉无咎 貞吝

뿔은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곳이다. 음의 자리에 있는 양효인 상구는 그야말로 기운이 남아돈다. 그러니 상승의 원동력이 될 수가 있다. 열기구의 풍선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풍선이 계속 위로 올라가기만 한다면 결국은 터진다. 아래로 다시 내려올 수단이 있어야 위험하지 않다. 상구는 위를 보기보단 아래를 보아야 한다. 힘이 약한 육오를 보고 내가 대신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는 것보다, 자기 짝인 육삼이 도움을 청하러 온 고을의 난리를 해결하러 가는 것이 낫다. 물론 상구의 위치나 힘으로 볼 때 그 일을 택한다는 것은 모기를 보고 칼을 뽑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칼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는 이상 그 요청을 자존심 상한다거나 격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지는 않아야 한다. 만약 상구가 오로지 자기의 체면을 생각하여 절실한 도움 요청을 외면한다면 인색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목표는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세워야 한다. 백만 원도 없는 처지에 일 년 내에 수백억 원의 자산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그저 망상이다.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웠더라도 가만히 앉아 저절로 목표가 달성되길 기다리는 것은 그저 게으름이다. 결과를 내는 것,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적절한 방향 설정과 행동과 추진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이루고 싶다고 생각한 목표를 세웠으면 주변의 달콤한 유혹이나 비아냥을 뚫고 초육처럼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거나 성과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더라도, 구사처럼 지레 의심하고 겁먹지 말고 육삼처럼 믿음을 두어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목표에 도달하거든, 아직 그 위치에 오지 못한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야말로 군자의 행보이다. 그러나 요즘은 구사처럼 사는 것이 영리하다는 말을 듣는다. 상구처럼 위에 있는 ‘잘나가는 사람들’은 도움은 커녕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왕이 제후에게 말을 많이 주는 것은 그 제후가 그의 능력과 재물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쓸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써 세상이 더 밝아지고 더 나은 곳으로 전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것이다. 그래서 못내 궁금하다. 그 ‘많은 말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왜 이 사회는 이렇게 멈춰 있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뒤로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 때는 항상 나에게 다짐한다. 나나 잘하자. 나부터 잘하자. 올해는 그래서 새해 목표를 이렇게 잡아 보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고 손을 내밀 수 있을 만큼의 그릇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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