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아버지, 그리고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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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아버지, 그리고 나의 해방일지
  • 승인 2022.12.3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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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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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아버지의 해방일지

지난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2023년 새 날을 맞이하는 오늘,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소설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바로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입니다.

정지아 지음, 창비 펴냄

소설은 빨치산 출신의 유물론자인 아버지 장례식이라는 사건 하나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아버지와 장례식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현대사에 얽힌 갈등과 사람들 간의 화해에 대해 담담히, 그러나 참으로 위트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장례식장 한 곳임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그렇게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날 수 있음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야기는 흘러 흘러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다면적인 아버지 삶을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현대사와 인간사에 얽히고 설킨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갈등도 생기고, 반목도 생기는 것이 삶이라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품는 삶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혜를 베풀었으나 마늘을 갖고 도망쳤던 사람을 감싸며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 “오죽흐먼 밤도망을 쳤겄어!”을 통해서, 그리고, 평생 아버지에게 원망을 퍼붓던 작은 아버지였지만, 결국 “역시 작은 아버지에게는 작은 아버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 시도 견딜 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라는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잔함이 마음에 젖어 듭니다.

사람마다 마주하게 되는 상황도, 삶의 무게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 소설의 주인공이신 저자의 아버지께서는 늘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이 이 해를 마무리하는 저에게 제일 큰 위안으로 다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나이 들수록 잘 산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오만하고 이기적이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실수투성이었다.”라고 책의 말미에 얘기하는 작가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연로하신 저의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 마흔에 제가 태어났으니, 제법 세대 차를 자주 느끼곤 하는데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갓 스물에 6·25 전쟁을 겪으시고, 파란만장하고 변화무쌍한 현대사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오셨으니, 자식들과 세상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아버지의 세상이 저만큼 지나가고 있고, 저의 세상도 또 바삐 달려가고 있음을 느끼며, 2023년 제가 해야 할 버킷 리스트 중 하나로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세상을 품어 안고 진심으로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제 자신이 더욱 잘 보이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해방의 시작이 아닐까요.

 

박히준 / 경희대 한의대 교수,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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