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7) 적법한 절차라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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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7) 적법한 절차라는 함정
  • 승인 2022.12.23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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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올해 봄 하천·홍수관리지역 주민들의 기자회견 현장(사진:김창승)

구례에 와 살면서 굉장히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최종학력 국졸 혹은 그 이하의 주민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체감상 그 전까지의 인생 수십 년간 만난 동일 학력의 사람들을 다 합한 것보다 몇 곱절은 되는 것 같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더욱 놀랍게도, 이건 그저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었다. 1994년 자료에서는 농촌의 60대 이상 무학/국졸 주민이 표본집단의 99.2%를 차지했고, 최근 2020년 도시 노인과 농촌 노인을 비교해 분석한 자료를 봐도 국졸/무학의 비율이 전자는 30%, 후자는 69%에 달한다.1) 얼추 3배가량 되는 수치다. 중요한 건 도시-농촌 간의 이러한 학력 격차가 ‘그냥 차이 좀 나네’ 정도로 끝나는 문제일 수 없다는 점이다. 대상 집단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정책과 제도들은 주민들의 삶에 실제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만다. 가끔은 그러한 효과를 노린 것일까 의아해지기도 한다.

2020년 섬진강 범람 이후의 상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끔찍했던 물난리 후 여기저기서 재난복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올해 4월, 상류 댐 관리 소홀 등에 대한 국가·지자체 등의 책임이 인정되어 주민 피해에 대한 공적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손해사정금액의 48% 선이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이 정도면 고성 산불이나 포항 지진의 피해자들보다 나은 상황이려니 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이 조정 과정에서 강 주변의 ‘홍수관리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제외되었다. 총 62 명의 주민들이 한 푼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피해배상과 조정의 근거가 되었던 환경분쟁조정법의 법 조문에 이런 제외 규정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손해사정과 서류 1, 2차 접수 등이 모두 마치고 조정결과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국토교통부 측이, “홍수 시 침수피해가 처음부터 예견”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조정대상이 될 수 없다는 문제제기를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당황스러운 건 이 주민들 태반은 본인들의 농지와 집이 홍수관리구역에 속해 있는지 여부조차 몰랐다는 사실이다. KBS 보도(2022. 1. 17. “내 집이 언제부터 하천구역?…‘수해 배상 제외 부당해’”)를 참고하자면, 남원과 전남 곡성 일대 하천구역과 홍수관리구역에서 난 피해 89건 가운데 구역 지정을 수해민이 알고 있었던 사례는 13건에 불과했다. 홍수관리구역 지정은 관련법 개정 후 2007년도에 시행되었는데 주민들 대부분은 국토부가 그 선을 긋기 훨씬 전부터 수십 년 같은 자리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현행 법규상 따로 개인들에게 공문이 발송되거나 하는 별도의 통보 절차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데다, 개인이 발급받아볼 수 있는 토지대장, 등기부 등본 등에도 구역지정 여부를 게시하지 않는다. 그러니 알지도 못했던 홍수관리구역 때문에 배상에서도 제외된다는 조정결과가 주민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을 테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공무원에게 물었다. "홍수관리구역인지 주민들은 몰랐는데 정부에서는 어떻게 구역지정을 알리나요?" 그러자 공무원은, "공람 절차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서면으로 공람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정부에서 구역을 정한 후 관보 또는 지자체 홈페이지 등에 고시하고 관련 서류 공람 기간(최대 20일)을 거친 후, 주민들의 의견을 서면으로 받아 다시 정부에서 의견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식으로 법적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때 이의가 있는 주민들은 [공람의견서]라는 것을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6년제 학부를 졸업한 전문직이자 서울대에서 박사를 받은 필자에게조차 [공람]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생소하고 난해한데, 대체 국졸/무학의 주민들이 공람 공고는 어디서 볼 것이며 불만이 있다 한들 대체 무슨 수로 [공람의견서]를 써낸다는 것일까. 공람 절차를 설명하는 공무원의 평온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쯤 되면 정말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적법한 절차, 법적 책임 규명 등과 같은 말은 공정하고 올바른 것같아 보인다. 딱히 저런 단어들에 반론할 만한 더 아름다운 말들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자꾸 그게 아니라고 하면 생떼를 쓰는 듯 보일 것 같아 움츠러들기도 한다. 하지만 홍수관리구역 지정과 고시, 그리고 배상 제외 등 일련의 과정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난리 이후 홍수관리구역 62명의 주민들이 겪어 온 온통 뒤집혀진 일상과 지속된 고통은, 바로 이 ‘적법한 절차’라는 방패 뒤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심지어 이 법은 일관되게 적용되지도 않는다. 개정된 환경분쟁조정법에는 명시적인 예외 규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수관리구역의 법적 근거인 하천법 조항을 활용해 이들 주민들을 배상에서 제외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재난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누군가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내버려두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이 법적인 틈, 공백, 구멍을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예외상태’라고 불렀다. 구례지역 사례에서 보듯, 법에 묶는 동시에 법으로부터 내버리는 이 상황 - 예외상태 -은 고금을 막론하고 취약한 이들에게 더 잔인한 방식으로 경험되고 만다.

 

신유정 / 한의사, 인류학박사

 

각주

1)박경순 등(2020). 사회적 연결감과 우울의 관계: 도시노인과 농촌노인의 비교.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이종현 등(1994). 경기도 농촌 지역 여성노인의 건강 및 식생활 실태조사.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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