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로 체험하는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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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영화로 체험하는 폭력의 역사
  • 승인 2022.12.23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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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아이리시맨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등

1975년, 미국에서는 당시 유명했던 노동 운동가인 지미 호파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전미트럭운송노조인 팀스터스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강력한 리더였는데, 실은 트럭 운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일했다기보다는 마피아와 결탁해 노조의 이익을 탐했던 인물이다. 미국은 이런 노조와의 결탁으로 세력을 불린 마피아 집단이 많았다. 지미 호파의 실종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뉴욕 마피아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추측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가담해 호파를 죽였다고 증언했던 사람이 마피아의 히트맨이었던 프랭크 시런이다. 그러나 시런은 본래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의 살바토레 브리구글리오를 범인으로 지목했다가 후일 자신이 직접 호파를 살해했다고 번복했기에, 심증만 있을 뿐 실제로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프랭크 시런은 자신이 호파를 살해했다는 내용을 담은 자신의 회고록을 발간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아이리시맨’이다. 영화는 트럭운전자였던 시런이 마피아와 연관되어 페인트공(암살자)일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1950년대부터 2000년까지 뉴욕 마피아와 전미트럭운송노조의 청탁과 부패, 폭력, 살해 등의 범죄행각을 다루고 있다. 아이리시맨은 프랭크 시런이 지미 호파 살해에 가담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탈리아계 부모에게서 자라나 어린 시절을 뉴욕 이스트사이드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었고, 그 역시 마피아의 범죄와 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그의 어린시절은 마피아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영향에서인지 그는 미국사회에 동화된 듯 겉도는 이민자(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를 주인공으로 하는 범죄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이 영화 ‘아이리시맨’은 폭력에 노출되어 온 이민자의 삶과 영화에 대한 그의 소신을 담아 만들어낸 영화다.

이 영화의 소재 자체는 자극적이고 흥미롭지만, 영화 흐름은 건조하고 담담하다. 일개 노동자였던 프랭크 시런이 마피아의 신임을 받아 노조 간부라는 위치에 오르고, 주위의 마피아와 범죄자들이 누리는 부를 보면 일종의 쾌감이나 짜릿함, 혹은 약간의 동경을 느낄 법도 하지만 스콜세지 감독은 이들을 지극히 냉정하고 담담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인물의 등장과 동시에 ‘몇날 몇일 머리에 총을 세 방 맞아 죽음’이라는 자막으로 이들의 최후를 강조하며, 관객들이 감상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허무를 강조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범죄자의 부와 명예도 결국 인생의 한 찰나이며, 대단한 마피아이며 히트맨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해본다 한들 결국은 요양원에 갇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외로운 노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인기 있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의 강렬하고 장엄한 최후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짜릿한 오락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작품이다. 게다가 러닝타임도 3시간 반이다. 추측컨대 넷플릭스가 ‘아이리시맨’의 판권을 지닌 것 치고는 넷플릭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넷플릭스 시청자들은 가볍고 편리한 영상을 좋아하니까.

그러나 ‘아이리시맨’은 그 자체로 미국사회의 어두운 폭력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평생을 영화에 몸 담아온 노장이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라는 장르의 여운도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3시간 반은 오히려 짧은 시간이다. 만약 누군가 미국 영화의 역사, 어두움의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마틴 스콜세지에게 3시간 반은 충분히 할애해볼 만 하다고 권하고 싶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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