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과학은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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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과학은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가
  • 승인 2022.1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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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생명을 묻다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핼러윈(Halloween) 축제를 즐기려다 유명을 달리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불과 1년 전에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책을 들뜬 마음으로 소개한 게 무색할 정도인데, 정부의 후속 대처를 보고서는 더욱 경악했습니다. 이번 10·29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영정도 위패도 없이 그저 향불만 피워 놓고 애도하라니…. 꽃다운 청춘들의 소중한 생명을 이토록 멸시해도 되는 걸까요?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데, 이를 계기로 생명의 참모습을 재삼 조망해보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도록 합시다. 마침 좋은 책도 나왔으니까요. 

◇정우현 지음, 이른비 펴냄
◇정우현 지음, 이른비 펴냄

 

『생명을 묻다』는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이란 부제에서 짐작하듯이, 아직까지도 기계론적 환원주의가 주류인 현대과학의 관점으로는 생명의 진면목을 밝혀낼 수 없음을 역설한 책입니다. 생물은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생겨났고, 생명의 본질은 결국 유전자와 뇌로 환원되며, 신경계의 적절한 연결·조합은 인식·정신을 만들어내므로 영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도 삭막하지만 15∼6세기의 과학혁명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발전해온 게 사실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진정한 생명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문학·예술 등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터미네이터조차 죽을 때(?!) 엄지를 치켜들며 “아스타 라 비스타(Hasta la vista)”를 외쳤잖아요? ^^


지은이는 덕성여대 약학과 정우현 교수님입니다. 암 생물학·분자유전학 연구로 「셀」·「네이처」 등의 국제적 저널에 유전학적 기전을 밝힌 논문을 실었다는 이력을 감안하면 이성·경험·필연·귀납 신봉론자일 듯싶은데, 반갑게도 우연·감성·관념·연역에도 애정이 많은 균형 잡힌 분이시더군요. 특히 정교수님께서 ‘과학(science)’의 어원인 그리스어 ‘scire’의 원 뜻은 ‘어떤 사물에 대해 안다’이므로, 일제 치하를 겪지 않고 우리 선조들이 주체적으로 번역했다면 ‘격치(格致)’라 했을 것이라고 설명한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저 또한 ‘science’는 『대학(大學)』에도 나오는 “물(物)에 격(格)하여 앎[知]에 이른다[致].”는 ‘격물치지(格物致知)’, 곧 ‘격치’가 더욱 합당한 번역이라고 여겼거든요. 동무공(東武公)께서도 당시 자신이 새롭게 알아낸 것들에 대한 저작물을 이름 하여 『격치고(格致藁)』라 하셨잖아요? 


책은 3부 15장으로 나뉩니다. 폴 고갱(Paul_Gauguin)의 대작 유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 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를 차용하여 3부 각각의 소제목으로 삼은 뒤, 각 부에 다시 5장씩을 할애하여 생명에 관한 여러 가지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식입니다. 제 능력으로는 민감·중요한 주제에 대해 내로라하는 30명의 철학자·사상가·과학자·문학가들의 주장을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필치로 풀이한 내용을 압축·요약하는 게 불가능한 만큼 직접 읽어보며 찬찬히 음미하시길 권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우리 과 대학원생들 붙잡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저서를 몽땅 읽힌 뒤 토론회라도 하고 싶었거든요. 

그나저나 이번 이태원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이 너무 크고 오래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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