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6) 제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미깡철(밀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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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6) 제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미깡철(밀감철)
  • 승인 2022.11.2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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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

남지영

mjmedi@mjmedi.com


제주에서는 미깡철이 한창이다. 미깡철은 밀감을 수확하는 시기를 말하는데, 미깡은 일본어이지만 제주에서 밀감을 칭하는 말로 아주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외래어이니 본 글에서는 밀감철이라고 표현하기로 하겠다.

11월~1월까지가 본격적인 밀감철인데, 이 때 수확하는 밀감은 조생이 대부분이다. 9월말에서 10월까지 수확하는 극조생은 조생보다는 덜 달고 과피에 푸른빛이 돈다. 우리가 보통 귤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생이다. 껍질이 노랗고 과육은 달콤하다. 너무 맛있어서 임금님에게 진상하는 과일이 될 정도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노오랗고 맛있는 조생을 따고 있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밀감철이다.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대한민국 남부지방 뿐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귤 재배를 시도하고 있을 정도지만, 지금도 귤 하면 제주에서만 재배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감귤은 제주의 상징이다.

실제로 귤 수확량이나 그 해의 귤 값에 따라 제주의 경제를 비롯한 많은 생활들이 영향을 받는다. 요즘에는 극조생이나 조생 같은 노지감귤 이외에 특수종도 많고 하우스감귤도 많이 재배되고 있어서 사시사철 감귤을 수확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11월에서 1월까지는 여전히 감귤철은 감귤철이다. 이 때 많은 이들이 감귤을 따러 나간다. 일당을 받고 일하는 분들에게는 일거리가 늘어나는 시기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제주인들은 본인이나 가족소유의 밭(제주에서는 귤농장을 그냥 밭이라고 함)이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밭에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한의원은 매우 한가해진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찾는 한의원에서는 그 분들이 본인 소유의 감귤을 거둬야 하거나 지인의 감귤수확을 도와주거나 일당소득을 위해 밭으로 가시게 된다.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친구나 친척의 귤밭에 시간 되는 대로 가서 도와주는 문화가 있다. 젊은이들도 부모님이 귤 농사를 하신다면 주말에 가서 함께 일을 하는 게 당연시된다. 이럴 때 어린이나 청소년은 보호자를 따라 나서거나 다른 이에게 맡겨지거나 집에 머무르게 되므로 한의원에 올 수 없다. 그래서 겨울이면 제주의 한의원들은 아주 한산하다.

그리고 그 해의 귤값이 어떠냐에 따라서 제주 전체의 경제상황이 들썩인다. 관광 상황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준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죄다 귤농사를 짓거나 관광업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단히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귤수확상황이나 관광업상태는 그 이외의 부분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것이 무시무시한 제주의 “미깡철”이다.

과거에는 제주감귤의 위력이 더욱 대단했다. 귤나무가 대학나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것은 1960년대 이후 제주감귤의 위상이 아주 높아지게 된 내용이다. 조선시대에 진상품으로 지정될 정도였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일본산 귤이 많이 수입되어 제주감귤의 존재는 희미해졌다. 그러나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이후 제주감귤 유통량은 당연히 많아지게 되었다. 게다가 70년대 80년대 우리나라 경제 급성장기를 맞이하면서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과일소비량이 늘어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제주감귤은 귀하게 대접받게 되었고, 그 당시 제주에서 감귤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경제상황이 상당히 풍족했다. 자식의 육지생활비 및 대학등록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귤나무는 대학나무라고 불리우곤 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제주인의 생활 속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귤. 현재는 사시사철 감귤이 나지만 제철인 11~1월이 되면 여전히 감귤철이다. 왠만한 식당에 가면 입구에 콘테나(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파치(상품성이 떨어지지만 품질에는 이상이 없는 것)가 가득하다. 후식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먹으라고 둔 것이다. 그 안에 담긴 감귤은 크기도 들쭉날쭉이고 겉모습도 안 예쁠 수 있지만 맛만큼은 일품이다. 귤 크기를 선별하는 것을 선과라고 하고 그 과정은 기계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기계를 지나는 동안 귤에는 미세한 상처가 생기게 되고 그 때문에 맛변화가 빨리 생긴다는 말이 있다. 필자도 정확히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파치들은 선과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맛이 더 잘 유지된다고 한다.

이맘때 제주에서는 감귤을 정말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집에 귤 이서(있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너 집에서 편하게 먹을 귤 있니? 없어? 혹시 다 먹었어? 그럼 내가 주려고 하는데 어때“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제주에 3년 넘게 살았는데 귤을 사 먹으면 친구 없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환자분들도 간간이 콘테나를 하나씩 갖다 주신다. “어제 밭에 강 딴 건디 맛 좀 봅서.(어제 감귤농장에 가서 딴 건데 맛 좀 보세요)”라며 툭 던지는 듯 속내 다정한 말씀과 함께 건네는 귤콘테나. 거기에 가득한 노란 감귤을 보면 이것이 마음 따뜻한 남쪽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 대표원장,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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