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젖어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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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젖어드는 시간
  • 승인 2022.11.0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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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효원

배효원

mjmedi@mjmedi.com


영화읽기┃ 안경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출연: 코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코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지금은 종영한 모 영화 프로그램에 가수 장기하씨가 나온 적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매회 게스트들에게 추천 영화를 한편씩 받았는데, 장기하씨가 추천했던 영화가 일본 영화 ‘안경’이다. 국내 아티스트 중 독보적인 캐릭터이면서 큰 안티가 없는 장기하. 최근 아무도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진심처럼 느껴지는, 욕심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단순하게 살 것 같은 캐릭터이기에 복잡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예전부터 장기하씨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사람이 추천하는 영화라면 독특하고 재밌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타에코가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에코를 포함하여 주요 인물은 총 5명인데 하나같이 자신의 캐릭터를 독특하게 끌어나간다. 지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상태로 섬을 찾은 타에코는 예사롭지 않은 민박집 주인과 게스트들을 잔뜩 경계하다 숙소를 옮기는 시도를 하지만 옮긴 곳이 더욱 예사롭지 않아 다시 돌아온다. 섬에서 무언가를 하며 정신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저 이곳에 젖어들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시청자는 타에코와 같은 시점이 되고, 나머지 등장인물4인이 현자가 되어 시청자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엇을 쫓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달려가는 삶에서 조금 벗어나 한 번씩 젖어드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생물선생 하루나의“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가장 현자 같은 캐릭터인사쿠라의 대답 “이 물고기와 똑같지. 한 번 죽으면 두 번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한 번 죽으면 끝인데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표정, 행동들을 통해 전달하는 부분도 많아서 불필요한 대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정말 꼭 필요한 대사만을 엄선한 듯 짧은 대사들이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후반부 바닷가 장면에서 요모기의 긴 독백은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중략)무얼 두려워하는가? 무얼 겁내는가? 이제 어깨를 누르는 짐을 벗어버릴 시간. 나에게 용기를 다오. 너그러워질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나는 자유를 안다.”

영화 정보를 찾아보면 코미디 장르로 나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엉뚱함과 예상치 못할 포인트에서 웃음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웃기려는 목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 자극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고 딱히 기승전결의 스토리 라인도 없이 전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주연과 조연이 나누어져 있지만 등장인물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여서 한 명 한 명이 기억에 남고 이들은 이후 더욱 유명한 배우가 된다.

2007년에 제작되었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아니 어쩌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시대에 위안이 되는 영화이다. 마음이 분주하여 쉬어갈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배효원 / 제주경희미르애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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