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31> - 『里鄕見聞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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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31> - 『里鄕見聞錄』② 
  • 승인 2022.10.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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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三神山을 유람한 탐라여인, 醫女 萬德

  지난 호에 다뤘던 심마니 채약꾼의 이야기는 원래 조선 후기민간에 전래되던 야담을 모아놓은『靑邱野談』이란 책에서 채록한 것이다. 『이향견문록』에는 이와 같이 선대의 여러 책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저자 유재건의 원고로 보이는 『兼山筆記』를 비롯해 『震彙讀考』나 鄭來橋의 『浣嚴集』, 洪良浩의 『耳溪集』등 여러 문헌에서 채록한 내용들이 주제별로 모아져 수록되어 있다.

 ◇ 『이향견문록』

  이참에 여기에 실린 陋巷의 숨겨진 인물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의약관련 이야기를 들춰보기로 하자. 이미 알다시피 고종 연간에 胥吏를 지냈던 저자 劉在建(1793~1880)은 시문에 능하고 글씨도 명필이어서 규장각에 봉직하면서 『列聖御製』를 편찬했고, 별도로 『法語』란 책과 중인들의 시를 묶은 『風謠三選』을 엮기도 하였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사 가운데는 의인편에 수록된 15인의 醫人들 이외에도 의약과 인연이 맞닿아 있는 인물들의 행적이 더러 기재되어 있다. 그중에 한 사람으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소개되어 있다. 바로 권4 열녀편에 내노라 하는 열녀, 효부들과 함께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제주 기녀 만덕의 사연이 있다.

  그녀는 본디 金姓을 가진 탐라 良家의 여식이었으나 어려서 어미를 여의고 의탁할 곳이 없어서 기녀의 집에 보내져 자라난 탓에 점차 성장하자 官府에서 妓籍에 올렸다. 20여 살이 지나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여 겨우 양인의 신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홀로 살면서도 함부로 용렬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지 않았다.

  그녀는 재화를 늘리는 재주가 뛰어나 시세의 등락과 품귀여부에 따라 팔고 사기를 반복해 몇 년 만에 남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커다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성상19년 을묘년(정조재위 19년, 1795) 때마침 제주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수 없이 굶어 죽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곡식을 배에 실어 진휼하려 했으나 8백리 바닷길에 돛배가 오고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만덕이 千金을 출연하여 육지의 여러 고을에서 쌀을 사오게 하니 일시에 구호미가 도착하였다. 그중 일부를 떼어내 자기 가족들을 구제하고 나머지는 모두 관아에 보내서 굶주려 浮黃이 난 백성들을 구하도록 하되 완급을 살펴서 차등 있게 나눠주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관청 뜰에 모여들어 그녀의 은덕을 칭송하였는데, 제주목사가 상부에 장계하여 임금께 알리었다. 주상께서 가상히 여겨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려 하였다. 그러자 만덕은 오직 뭍에 올라가 한양 땅에서 주상이 계신 대궐을 한번 보고 금강산에 가 1만2천봉을 구경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노라 고하였다.

  당시 제주여인이 바다를 건너 육지에 오르는 것은 국법으로 금하였기에 이듬해 만덕은 임금의 特賜를 받아 도성에 입궁하여 영상인 채제공을 뵈었으며, 內醫院의 醫女에 임명되고 여러 의녀들의 班首에 올라 內殿에 문안을 올리는 영예를 입었다. 반년을 지내다 1797년엔 금강산에 들어가서 명승지를 차례로 구경하였다.

  이때 만덕의 나이 58세였는데, 절집과 불상을 처음 보았다고 하니 제주의 사찰은 정조 이후에나 전래되었던 것인가 싶다. 금강산 유람에서 돌아와 한양에서 채상공을 다시 뵌 만덕은 살아서는 다시 못 뵐 別離의 눈물을 흘렸다. 이에 상공은 전설의 영산인 三神山 가운데 瀛洲(한라산)와 蓬萊(금강산)를 둘러본 탐라인이 무엇을 슬퍼하느냐며 萬德傳을 지어 주었다고 『樊巖集』에 전한다.

  또 紅桃라는 기생이 “女醫 중에 으뜸(行首) 탐라여인, 萬里 물결치는 바다에 바람을 겁내지 않았네”라고 시를 읊어 환송하였다. 三多島 제주는 바람도 많고 여인도 많고 의녀도 많이 낸 곳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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