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5) 자영업자로서의 한의사, 허덕이며 지나는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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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5) 자영업자로서의 한의사, 허덕이며 지나는 1년
  • 승인 2022.10.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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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

남지영

mjmedi@mjmedi.com


 

급여 생활자의 한 달은 월급 “받는” 날을 기준으로 휙휙 돌아가고, 급여를 주는 사장들의, 한 달은 월급 “주는” 날을 기준으로 허덕허덕 돌아간다. 그걸 12번 반복하면 한 해가 후다닥 지나있곤 한다.

자 이제 10월. 벌써 1년의 3/4이 지나갔고, 나는 며칠 전에 연세(건물임대료, 제주에서는 연단위로 내는 곳이 대부분이다.)를 내고 통장이 텅텅 비어 텅장이 된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한 달마다 월세 낸다 생각하고 매 달 모아 놓았다면 걱정없을텐데, 매 달마다 ‘아아 연세 모아야 되는데~~아아아~연세 모아야 되는데~ 월세처럼 적립해야 되는데~~~아아아아아~~“하다 보면 1년이 다 가고 만다.

오늘은 꼭 숙제하고 자야지, 내일부터 일기써야지, 올해는 가계부를 쓰고 말 테다 등등의 다짐을 하지만…그 다짐은 물거품과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 연세 모으는 것도 똑같다. 절대 모으지 못한 채로 연세 내는 날이 다가오고, 영락없이 고비를 맞이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비단 연세 뿐이랴. 자영업자로서의 1년은 매 달 마다의 중요이슈를 처리하다보면 한 해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연말이 되어 있곤 한다.

나의 1년을 월별로 이야기해 보겠다. 그 스토리를 보는 원장님들은 같이 울게 될 것이고, 부원장님들은 설마설마하며 반신반의하거나 원장들이 불쌍해서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자, 1월을 야심차게 시작한다.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니까~! 그리고 곧 설연휴가 찾아온다. 예전에는 명절에 부모님 드릴 보약 찾는 환자가 그리 많았다는데, 임상 16년차인 나는 한 번도 그런 시기를 보지 못했다. 되려 연휴준비한다고 환자가 줄어들고, 환자분들도 세뱃돈이며 부모님용돈 등을 준비하느라 허리띠를 조이는 시기다. 2월은 윤년이 아니라면 총 28일로 일요일을 제외하면 진료일이 23~24일에 불과하다. 보통 한 달 진료일은 25~27일 정도이니 2~3일 정도의 매출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건물임대료, 직원 월급 등은 진료일이 적다고 적게 내는 것이 아니다. 지출은 똑같다.

그렇게 보릿고개를 어찌어찌 어렵게 넘기고 3월이 되어 조금 숨통이 트일 만 하면, 4월 고사리철이 온다. 자, 육지분들 잘 들으시라. 고사리철이 되면 굉장히 많은 제주인들이 들판으로 나간다. 새벽녘에 이슬을 맞아 고개를 든 어린 고사리를 꺾어 바구니 한 가득 채우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고 한다. 채취한 고사리를 삶아 냉동하거나, 바짝 말려 보관한다. 집안에 제사가 있거나 명절이 되면 그 고사리를 가지고 나물을 만들어 먹는다. 아무튼 이 고사리철이 되면 한의원은 절간이 된다. 너도 나도 손을 잡고 즐겁게 들판으로 나갔다가 집에 가서 쉬시는 시기. 한의원에 올 시간은 없다.

4월 고사리철이 다음은 5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포진해 있다. 위에 기술한대로 이제 그런 기념일에 한의원이 붐비는 시기는 없다. 새로운 보릿고개일 뿐. 게다가 5월은 종합소득세의 달!!! 생각같아서는 느낌표를 100만개 찍고 싶다.

6월이 되어 한 숨 돌리려나 싶으면 7-8월은 여름휴가 및 태풍의 계절이다. 날이 좋으면 휴가를 즐기러 나가고, 날이 좋지 않으면 위험하니 집에서 요양을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날이라면 일단 더워서 나오기 싫은 여름. 나도 같은 마음이지만 한의원에 나와 업장을 지켜야 한다. 절간에 스님이 없으면 안 되지.

그렇게 여름을 지나면서 하반기는 좀 잘 해 보고 싶다 생각하며 9월이 되는데, 뭔가 조금 순조롭게 풀린다 싶으면 추석연휴가 되고 만다. 고객님들은 바쁘시고, 영업일은 적어지는 그러한 시기가 또다시 도래한 것.

시기가 그러한 것을 어찌하랴. 꾸역꾸역 참고 견디며 직원월급도 주고 거래처 결제도 하면서 한 달을 보내지만, 나는 9월말까지 연세를 내야 한다. 매 달 월세 낸다고 모았으면 좋았으련만 13년간 그런 일은 절대로 성사된 적이 없다. 자괴감과 상실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10월이 되어 뭔가 조금 해보려 하나, 곧 11월이다. 중간예납의 달.

우리나라는 정말 친절하다. “내년에 세금내야 하는데 한꺼번에 내려면 힘들지? 그러니 특별히 세금 절반 정도를 미리 내게 해 줄게~ 원래 미리 내는 것도 마음대로 하는 거 안 되는 거다? 절반은 너 작년 매출 기준으로 할게. 대신 안 내면 과태료 붙는다?? 올해 매출이 급감했다고? 오호호~ 그건 내년에 반영해 줄게~ 일단 내고 봐~ 내년에 힘들까봐 미리 내게 해 주는 거라니까~~”라는 매우 깊은 배려에 힘입어 소득세를 미리 좀 내야 한다.

울면서 겨자를 먹고 맞이한 12월. 육지라면 좀 힘을 내는 시기겠지만, 제주는 미깡철(귤 따는 시기)이 한창이다. 고사리철과 마찬가지로 미깡철은 환자실종의 시기. 하우스밀감이 사시사철 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귤철은 귤철이다. 실제 귤철은 12월보다 훨씬 일찍 시작하기에 다음 글은 귤철이나 미깡(귤)에 대한 내용이 될 것 같다. 맛있는 귤이 무시무시해 보일 글일지, 귤이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은지에 대한 글일지 기대하시라.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 대표원장,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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