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5) 옥상텃밭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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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5) 옥상텃밭 유감
  • 승인 2022.09.3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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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화 중. 류재숙 변호사의 옥상 텃밭 전경

우리집에는 손님용 별채가 있는데, 항상 반가운 손님이 오시는 것은 아니어서 대개는 부업 민박용으로 사용한다. 묵고 간 손님들은 리뷰를 남기는데 그중 아직도 종종 기억나는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 말을 옮기자면 대략,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집이 도시 근교 전원주택 같은 외관이라 실망스러웠고 아랫마을 한우 축사에서 소똥 냄새가 나는 듯해 불편했다는 것이다. 시골집인데 촌집 같은 느낌이 없어서 유감이었다고 하니 농촌 정서를 동경하는 사람이었나 싶으면서, 그런데 동시에 촌에서 날 수밖에 없는 소똥 냄새는 불쾌하다고 하니 이 상반되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싶어 난감할 수밖에. 게다가 그가 맡았다는 냄새는 사실 봄철에 밭마다 뿌려놓는 가축분 퇴비의 냄새였다. 굳이 축사가 아니더라도 밭에서 농사짓는 곳에 오면 맡지 않을 도리가 없는 냄새인 셈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나서 도시의 관광객들이 농촌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골은 ‘시골’같은 느낌이어야 하면서도 불쾌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 쾌적한 곳이어야 한다는 그 이야기에 사뭇 반감이 들었다. 농촌은 사람들이 살고 밥벌이를 하는 생활의 공간이지, 사람과 집 혹은 마을째 통째로 떠서 진열해둔 민속촌 같은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연한 삶의 장소를 관광상품처럼 대하는 태도가 불편했다. 그런데 그때 그 리뷰를 읽고 느꼈던 그 감정이 최근 드라마를 보다가 생생하게 기억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12화에서 인권변호사 류재숙의 옥상 텃밭을 보고 나서였다.

스스로를 농부라고 하는 그 변호사는 옥상에서 오이, 고추, 상추, 치커리, 토마토 등 각종 작물을 재배하고 작은 잔치를 할 수 있을 만큼 수확을 해내는 대단한 농사기술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오이는 이 가뭄에 꼬부라진 것 하나 없이 통통하고 길고 곧으며 흠집 하나 없었다. 오이 넝쿨을 뽑아올릴 만한 큰 지주대도 보이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컸을까 혼란스러운 눈으로 화면을 뒤졌다. 가로세로 각 30 cm 정도에 깊이는 채 한 뼘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원목 화분들 여남은 개가 그의 텃밭의 전부인데 놀라운 일이었다. 농약을 안 치면 벌레가 너무 먹고 열매도 쪼그라져 버리는 친환경 농가들의 골칫거리 작물 고추마저도, 그의 원목 화분 안에서는 줄기마다 주렁주렁 파랗고 빨갛고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샤프심만해서 곧 넘어갈 것만 같은 고춧대가 몇 개 꽂혀있긴 했지만, 틀림없이 저 인권변호사는 무농약을 고수했을 텐데 어떻게 벌레 먹은 잎 하나가 보이지 않는지 내 눈을 의심했다. 솔직히 옥상 문이 열릴 때 BGM이 깔리면서, 스테인도 칠해져 있지 않은 깔끔한 원목 화분들과 북유럽 느낌의 파라솔이 놓인 옥상 텃밭을 비춰줄 때부터 인상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은 물도 흙도 튀지 않은 채, 심지어 햇빛에 바랜 흔적도 없이 그저 깔끔하고 예쁘기만 한 원목 화분들이 거슬렸다. 텃밭은 텃밭인데 고급스러운 모던 풍의 인테리어 같아 보이는 공간. 정제되고 아름답고 더러움이 전혀 묻지 않은 무균의 소독실 같은 텃밭이 너무 난해했다.

농촌에 살지만 농부는 아니니 입댈 처지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이건 그냥 현실적인 이야기다. 올해 같은 가뭄에 한 뼘 깊이도 안 되는 화분에다 모종을 심어놨다면, 하루에 최소한 두 번 이상은 물을 주었어야 식물의 생존 - 생장이 아니라 그저 생존 -이 가능했을 것이다. 얕은 흙에서 수분은 금방 말라버리고 만다.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1인 시위를 하고, 변론을 준비하며, 또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인권변호사께서는 대체 어느 참에 옥상에서 그렇게 농사를 지으실 수 있었을까. 큰 규모의 농사가 아니라고 해도 살아있는 생물을 돌보고 가꾸는 일에는 시간과 수고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오롯이 깔끔하고 아름답기만 할 수 없다. 오이가 통통해지려면, 고추가 손님들과 나눠먹을 정도로 제법 자라려면, 때로는 냄새나는 거름이 필요하기도 하고 원목 화분에 거름과 흙이 튀어 더러워지기도 한다. 게다가 더위에 하루 두 세 번씩 옥상에 올라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은 꽤 번거롭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세게 물을 흘려보내면 뿌리가 다 드러나 식물이 다치게 되니 흙이 푹 젖을 정도로 약하고 부드럽게, 오랜 시간 고루고루, 매일(!) 뿌려줘야 한다. ‘워라밸’을 위해 주 5일 물주기를 한다면 틀림없이 그 텃밭은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오염도 없고, 노동도 없이 그저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텃밭은 존재할 수 없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속 예쁘기만 한 옥상 텃밭이 더 기이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텃밭을 가꾸는 모든 도시 농부들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다. 도시 속의 텃밭이야말로 정말 필요할 테다. 물을 주고, 흙을 채우고, 태풍에 쓰러진 지주대를 세워주다 보면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길러내는 일은 마냥 깔끔하고 쾌적한 작업이 아니라, 구린 냄새도 나고 태양빛에 색이 바래기도 구정물이 튀기도 하고 무엇보다 몹시 수고로운 일이라는 사실 따위를 몸으로 알게 된다. 그러니 작은 텃밭을 꾸려가는 일조차 수고도 냄새도 더러움도 없이 그냥 예쁘기만 한 볼거리일 수는 없다. 드라마나 민박 손님 리뷰가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먹거리를 심고 키우는 일은 누군가가 보기에 좋은 관상용 그림 액자 따위가 아니다. 인권변호사든 세상을 구원하는 슈퍼맨이든, 텃밭 농사는 누군가의 정체성 과시를 위한 악세사리로 소비될 만큼 그저 사소한 일일 수 없다. 귀찮고 피곤한 날에도 몸과 마음,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돌봄이자 노동으로만 농사가 가능하다는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그것이다.

 

신유정 / 한의사, 인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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