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그 시절 ‘등골브레이커’의 차별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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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그 시절 ‘등골브레이커’의 차별 마케팅
  • 승인 2022.06.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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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화이트핫: 애버크롬비 & 피치 그 흥망의 기록

2010년대 초반, 한국에서 잠시 ‘애버크롬비 & 피치’, 흔히 말하는 ‘아베크롬비’ 브랜드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15살 아이들은 부모님 손을 잡고 들어와 학생이 입기엔 비싼 옷을 경쟁하듯 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이 지나면서 아베크롬비 후드집업은 그 시절 ‘등골브레이커’가 되어 부모들이 입고 다니다가 이제는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옷이 되었다.

감독: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앨리슨 클레이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화이트핫: 애버크롬비 & 피치 그 흥망의 기록’은 미국에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인기가 많던 이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 브랜드는 ‘등골브레이커’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쇼핑몰에서 만나 친구와 어울려 놀던 시절, 미국 10대들은 섹시한 프레피룩을 파는 이 브랜드에 열광했다. 쇼핑백에 옷보다 옷을 입지 않은 근육이 더 많이 보이는 브랜드, 매장에 가면 조각처럼 예쁘고 잘생긴 직원들이 런웨이를 걷듯이 일을 하고 있는 브랜드. 이 옷은 미국의 ‘쿨’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브랜드의 쿨한 전략은 차별로 번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베크롬비의 차별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이 브랜드의 대표였던 마이크 제프리스는 “우리는 쿨한 사람만 우리 옷을 입길 바란다”고 말하며, 유색인종은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거나 매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청소만 시키는 고용매뉴얼로 질타를 받았다. 이외에도 근육질의 백인남성만 모델로 고용하는 등의 인종차별적인 행태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유해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아베크롬비가 미국보다 한 발 늦게 유행한 이유도 아시아 시장을 배척해서 진출이 늦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아베크롬비의 차별전략이 미국에서 어떻게 소비되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그 시대에 유행했던 락밴드 음악을 트는 등의 소소한 연출이 약간의 향수를 자아내며, 왜 아베크롬비가 그토록 인기였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내용의 깊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아베크롬비는 논란이 차고 넘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사회적 논쟁거리를 다룰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기보다는 수박 겉핥기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다큐에서는 아베크롬비의 마케팅전략이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외모지상주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조가 옷 디자인에도 깔려있다고 소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아베크롬비를 입어본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이 브랜드는 ‘날씬한 백인’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대다수의 동양인이 입기에는 팔이 길고, 바지의 경우 길기도 길지만 골반이 좁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엉덩이가 발달한 히스패닉이나 흑인에게도 불편했다. 사이즈도 여성 XL를 제공하지 않아 질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팔다리가 길고 날씬해서 이 옷이 잘 맞는다”는 자만감이 얼마나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해로운지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브랜드의 ‘날씬하게 들어맞는 핏’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말이다.

그에 반해 인종과 체형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해 인기를 얻게 된 ‘세비지X펜티’나 ‘나이키’의 성공사례를 통해 배타적이지 않은 ‘착한 마케팅’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소개하는 편이 다큐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좋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아베크롬비라는 의류브랜드의 사건사고 자체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만큼, 부담 없이 볼 만한 다큐멘터리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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