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부부는 동상이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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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부부는 동상이몽 중
  • 승인 2022.06.1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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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효원

배효원

mjmedi@mjmedi.com


영화 읽기┃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감독: 윌리엄 니콜슨출연: 아네트 베닝, 빌 나이, 조쉬 오코너
감독: 윌리엄 니콜슨
출연: 아네트 베닝, 빌 나이, 조쉬 오코너

얼마 전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사랑의 진행단계에 따른 뇌 분비 호르몬 변화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분이 좋다가 둘이 서로 좋아하게 되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격정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이후 편안한 애착이 형성되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함께 있음으로 안정을 느끼는 시기가 찾아온다. 우리가 흔히 사랑의 유효기간이라고 생각하는 시기는 도파민 분비시기까지, 좀 더 인심을 쓰자면 출산으로 인한 옥시토신 급감기 직전까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비슷한 조건에서 누군가는 평생을 배우자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사랑이 끝났다며 배우자를 떠나간다.

결혼 29주년을 앞둔 어느 저녁, ‘그레이스’는 남편 ‘에드워드’의 사랑을 확인하려 들며 남편에게 관계 유지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을 채근한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 관계가 너무 버겁다. 이미 제 갈 길을 가버린 ‘에드워드’의 마음은 인내하지 못한 채 결국 떠나버리고 이 상황의 뒷수습은 아들 ‘제이미’가 맡게 된다. 외국의 부부는 좀 더 쿨한 관계를 형성할 줄 알았는데 당장 옆집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장면들이 펼쳐지는 걸 보니 부부 관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비슷한가 보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해도 사랑이 동시에 끝난다면 괴로움이 덜 할 텐데 야속하게도 대부분 남겨지는 사람이 발생한다. 운이 좋아 살아생전 마음이 변치 않더라도 언젠가 죽음이란 것이 둘을 갈라놓게 되니 한날한시에 죽고 싶다는 부부도 있다. 그만큼 남겨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가 슬픔의 4단계를 최초로 주장한 이후 미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가 말기 암 환자들을 면담하며 죽음(슬픔)의 수용단계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으로 재정의하며 일반화되었는데, 영화는 이러한 과정들, 현실 부정의 단계를 지나 결국 받아들이기까지 남겨진 이의 고통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부부의 이별에는 자녀의 상처도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젊은 연령대의 이혼이 증가하면서 어린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아졌지만, 나이가 많은 자녀들이라고 그 충격이 적다고 할 수 없다. ‘제이미’는 자신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로해야 하고 아버지의 입장도 존중해 두 사람의 중재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 ‘제이미’를 위로하는 이는 친구뿐, 두 부모는 자신들의 감정만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부부가 헤어질 예정이라면 자녀의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의 감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원제 ‘Hope gap’은 영국 남부 마을 Seaford의 절벽 이름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면서, 은유적으로 우리가 사랑에 거는 기대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이 상대를 구속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속마음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는 영화이다.

 

배효원 / 제주경희미르애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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