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2)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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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2)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 승인 2022.06.03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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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남편의 근무일정이 5월부터 갑자기 바뀌면서 초등학생인 아이의 등교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둘 다 7시 30분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직 저학년인 아이를 그 이른 시간에 아무도 없는 학교에 덩그러니 데려다 놓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서였다. 세상은 너무 험하고 아이는 너무 어렸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내가 병원에 30분 늦게 출퇴근하는 것, 혹은 남편이 회사에 유연근무를 신청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둘 다 유연근무인 셈이지만, 내 경우 병원에서 그런 제도를 운영하는 건 아니니 사정 좀 봐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차이가 있었다. 별 무리 없는 청이라 생각해 한 차례 이야기를 했는데 기다려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담당자는 다른 일이 바빠 깜박한 것 같았다. 채근을 하려고 할 즈음, 병동 코로나 환자가 늘어 가동 병상 수가 줄면서 옆방 원장님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도저히 30분 늦게 출퇴근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남편 회사(공기업)에서는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어이없게도 전산시스템의 문제로 유연 근무를 신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겨우 출퇴근 시간 30분 조정하는 문제였는데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간 아이가 하나라서 어딜 가도 어른들한테서 비난받았다. 우리 부부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아이를 하나만 낳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도 사회는 협조를 해주지 않으니 분노가 치밀 수밖에!

물론 나라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 등에서 양육 공백이 생길 경우 돌보미를 시간제로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시골은 도시와 달라서 서비스를 신청할래도 동네 근처에 돌보미가 없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0대만 되어도 농반 진반으로 ‘청년’이라고 불리는 이 고령화된 농촌에서 중장년의 돌보미가 우리 집 옆에 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예전처럼 도시의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옆집 할머니한테 아르바이트 좀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단지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었을 것이고, 옆집 할머니가 아침에 잠깐 아이를 챙겨 같이 손잡고 걸어서 데려다주는 것이 가능했을 터. 하지만 시골에서 학교 근처에 살지 않는 경우 통학버스나 자동차 없이는 아이 등교가 어렵고, 이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었다. 아이 할머니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이가 이른 아침 학교에 가서 오도카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두 가지뿐이었다. 최악의 경우 할머니는 아이 등교를 위해 사표를 써야겠다며 마음을 정리하고 계셨다. 한 달 내내 그렇게 끙끙거리며 이 사회에 대한 분노 게이지를 높여가던 중, 다행히도 병원에서 출퇴근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연락을 받고 우습게도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안도감이 들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내 상황에 쓰이는 말이 아니라, 20세기 말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되면서, 가정 등 사적 영역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들이 결코 한 개인만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부조리의 결과라는 주장을 담고 등장한 표어다. 우습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의 이 사적인 경험이 얼마나 무수한 사회적 맥락 위에 놓여있는지를 곱씹으면서 이 말을 되뇌었다. 농촌에서는 해마다 급격히 줄어드는 학령인구 때문에 면 단위 분교들은 거의 폐교되었고, 학교들끼리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1) 그렇다면 읍도 아닌 면 단위 작은 마을의 아이들은 더 먼 거리의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가 우리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에까지 닿고 보니 마음이 더 갑갑했다. 아이가 다녔던 병설 유치원도 2년 전까지만 해도 20명이 넘던 원아가 올해에는 5명으로 줄었다. 읍내의 다른 유치원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1/4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우 2-3년 전과 비교해 정원이 반토막인 곳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시골에서는 지금도 매년마다 인구절벽을 실감한다. 우리 가족에게 아이돌봄서비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시골은 도시와 달리 공적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공기업, 전문직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30분 유연하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웠다. 계약직으로 일을 하거나 유연근무제 말도 꺼내지 못할 중소기업에 다니는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면 대개 그런 경우 엄마들이 직장을 그만두곤 했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혐오 문화는 논외로 치더라도, 정작 경력 단절 이후 아이가 좀 더 크고 나서 일자리를 구해봐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마음을 더 갑갑하게 만든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가 거의 없는 농촌에서는 농협 하나로마트나 읍내 다이소 매장의 캐셔 정도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농촌 지자체에서 출산장려금 액수를 아무리 늘려봤자 결코 출산율이 늘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이런 여러가지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신유정 / 한의사, 인류학박사

 

각주

1)시·도교육청에 지급하고 있는데, 전남도교육청의 경우 35개교가 통폐합되어 총 1398억 2000만 원의 인센티브를 지원받았다(출처: 교육부 '2017~2021년 학교통폐합 인센티브 현황' 자료). 특히 인구감소가 가파른 전남에서는 학교통폐합 정책이 지역 소멸을 초래하는 핵심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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