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주역] 택산함 – 교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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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역] 택산함 – 교감의 기적
  • 승인 2022.05.2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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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박혜원

mjmedi@mjmedi.com


박혜원
장기한의원장

심심상인(心心相印)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그렇게 꼭 들어맞는 것처럼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그런 일이 있기도 하지만 실생활에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일 듯하다. 사람이 천 명이 있다면 제각기 다른 천 가지의 마음을 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의 뜻을 한 가지로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는 정말 좋아서 그 뜻을 지지하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어서, 또 누군가는 그 반대가 너무 혐오스럽기 때문에 이쪽을 지지하기도 한다.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은 같으나 그 마음 속은 이렇게 제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그 뜻이 통하고 잘 맞는 순간이 있다.

이런 모습을 나타낸 괘가 택산함이다. 택산함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咸亨 利貞 取女吉

彖曰 咸感也 柔上而剛下 二氣感應以相與 止而說男下女 是以亨利貞取女吉也 天地感而萬物化生 聖人感人心 而天下和平 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의 시작은 무엇일까? 일단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무섭거나 부담스럽거나 나보다 너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속을 터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솔직한 그 속을 듣고자 한다면 듣는 사람은 자기를 낮춰야 한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너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는 자세로 나가야 겨우 그 마음 속을 얻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외괘인 택은 부드럽고 내괘인 산은 단단하다. 이를 남녀로 표현하여 남자가 여자 아래에 자리한다고 말한 것이다. 성인은 보통 사람들보다 명성도 학식도 높은 사람일테지만 자신을 낮추어 그들의 말을 듣고자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였을 때 왜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初六 咸其拇

 

상전에는 엄지발가락에 느끼는 것이 志在外也라 하였다. 엄지발가락은 신체의 아주 일부이며, 흔히 그 자극을 무시하게 되는 지절의 말단이다.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눈을 가리고 손가락만으로 물건을 더듬어 정체를 알아맞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엄지발가락으로 물건을 더듬어보고 그 정체를 맞출 수 있을까? 초육은 느낌은 있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직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六二 咸其腓 凶 居吉

 

흉하다면서 가만히 있으면 길하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상전에는 順不害也라 하였다. 그 뜻을 조금 알았다고 떠벌리고 다니지 말고, 그 마음을 다 안듯이 행동에 옮기지 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아리는 발가락보다는 피부 면적이 넓지만 여전히 전부를 파악하기에는 어렵다. 마음을 조금 열어 보였더니 그것을 밖에 나가 자랑하고 다니거나, 작은 호감을 보였더니 바로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 리 없다. 마음을 이제 조금 얻은 것이니 신중해야 한다.

 

九三 咸其股 執其隨 往吝

 

허벅지까지 왔으면 얼추 인체의 절반 정도까지는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상전에 咸其股 亦不處也 志在隨人 所執下也라 하였다. 머무를 자리가 아닌데 머무르는 것도, 따르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따라오는 게 아니라 억지로 붙잡아 곁에 두는 것도, 갈 곳이 아닌데 가는 것도 모두 부적절하다. 이제 겨우 호감을 갖고 서로 만나볼 생각을 하고 있는 남녀가 있다고 하자. 그런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불쑥 찾아와 돌아가지 않고 있다면, 아니면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을 붙잡고 못 가게 하고 있다면, 그 사람과 마음을 나눈 것은 다 잊은 것처럼 호감을 보이는 다른 이에게 냉큼 가 버린다면, 전부 마음 상할 일이 아닐까? 구삼은 내괘의 마지막 효이다. 이제 막 마음이 열리고 서로 좋은 감정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는 상태의 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 잘못하면 되려 잘 모르는 타인일 때보다 더 나쁜 관계로 추락하기 쉽다.

 

九四 貞 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바르게 하면 길하고 뉘우침이 없는 이유를 상전에는 未感害也라 하였다. 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면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누군가 보기엔 그른 일이라면 불안이 없어질 리 없다. 자주 오고 가는 것은 未光大也라 했는데, 아직 서로에 대한 믿음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는데, 아직 그 믿음과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니 자주 오가며 자기 뜻을 전하고 관계를 돈독히 해야만 하는 것이다.

 

九五 咸其脢 无悔

 

등에 느낀다는 것은 志末也라 하였다. 그야말로 그 심중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나 길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뉘우침이 없다는 말뿐이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가장 쾌감을 느낄 때를 점수로 매긴다면, 원하던 이성과의 교제를 성공하는 순간이 상당히 높은 점수를 얻는다고 한다.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 같고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빠르면 하루 이틀, 길면 몇 달 사이에 사람은 그것에 익숙해지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아무리 서로 애를 쓰고 노력한들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은 좀처럼 되살려지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이 할 일은 그 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그 교감의 순간이 만들어준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에 후회가 없어야 마음의 교류도 계속되고 관계도 지속할 수 있다.

 

上六 咸其輔頰舌

 

상전에는 볼과 혀에 느끼는 것은 滕口說也라 하였다. 구설에 오른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구오에서 이미 심중에 다다른 교감은 그것으로 이미 최대치까지 간 것이다. 그럼 그다음에 온 상육의 상황은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미 얻은 마음을 붙잡아두고 떠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말로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뿐인 것은 누구나 언제가 되었든 알아채게 되어 있다. 상육은 구삼과 서로 음양응을 이루는 자기 짝이지만 구삼도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상육은 교감 없이 말로만 때우는 상황이라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함괘는 모든 효가 서로 제 짝과 음양응을 이루고 있는 상황인데, 만약 상육과 구삼이 서로 한눈을 팔아 주변을 기웃거린다면 그 모든 것들이 다 흐트러진다. 그 둘의 관계만 파탄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의 관계에도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말이 없을 수 없다.

남녀 관계에서도 서로 마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쉽고도 어렵다. 첫눈에 서로 눈이 맞아 불타오르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신뢰를 쌓아오다가 겨우 이루어지는 관계도 있다. 한쪽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다른쪽은 성급하다면 부담을 넘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람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고,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같은 때에 통한다는 것은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민심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느 한 곳에 쏠려 있을 때, 그 마음을 헤아리고 붙잡고 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그 마음을 얻는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추진하기 어려운 생각들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저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성인은 그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하더라도, 들어주기라도 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함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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