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1) 알 수 없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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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1) 알 수 없는 고통
  • 승인 2022.04.2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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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대학원 수업에서 읽은 레나토 로살도(Rosaldo)의 글은 제목부터가 독특했다. 일롱고트족 “머리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은유적인 표현도 아니고 정말 길을 지나는 사람의 머리를 잘라 저 멀리 던져버리는, 말 그대로 인간 ‘머리 사냥’에 대한 논문이었다. 로살도는 언뜻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이 머리 사냥의 이유를 연구하면서, 그것이 다름 아닌 소중한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었다고 설명한다. 더욱 흥미로운 건 그 이후 약 14년이 지나 그의 아내인 미셸 로살도가 실족해 사고사한 후 그가 쓴 글이다. 일롱고트족에 대한 현지조사 당시, 사실 그는 대체 상실감과 사람 머리를 잘라 던지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가 사망하고서야 비로소, 누군가의 머리를 베어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상실감으로부터 나오는 깊은 ‘분노’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물론 그래서 로살도가 머리 사냥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을 앞 섬진강변 산책길. 지리산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2020년 홍수 때 이 주변 마을들은 모두 물에 잠겼다. (사진 출처: 신유정)

로살도의 사례는 내가 인류학을 좋아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전혀 이해 안 되는 현상과 사람들. 인류학자들은 이들을 어디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버리는 대신 그들의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연구자 본인이 가진 입장과 인식의 한계들 역시 성찰하고 인정할 것을 요구받는다. 로살도 본인조차 아내가 죽고 나서야 상실감의 깊이를 깨달았던 것처럼,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여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특히 고통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2년 전 내가 사는 구례에는 큰 물난리가 났었다. 긴 장마 끝에 상류 댐에서 대량 방류하는 과정에서 제방이 터졌고, 읍내를 포함해 구례 전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 근무하던 병원도 1층과 지하가 모두 잠겨, 진료실에 가져다 뒀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이 몽땅 쓰레기가 되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홍수라 어찌 보면 나도 피해자인 셈이었지만, 집, 논, 밭, 축사 등이 잠겨 졸지에 전 재산을 잃고 체육관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야 했던 이웃들에 비하면 내가 입은 피해는 그저 새 발의 피나 같았다. 당장 생계와 주거가 막막해진 주민들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몇몇 관련 보도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상류 댐의 방류량을 미리 조절, 대비하지 못한 것이 섬진강 범람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언론이 관심 가져주면 문제 해결이 빠를 것이라 기대해왔다.

하지만 정작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참담했다. 대부분 “결국 돈 내놓으라고 생떼 쓰는 거”라는 비아냥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댓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건 내가 대단히 선량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피해당사자들 근거리에 있는 내부자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최근 2년 만에 받게 된 보상금은 손해사정액의 48%, 주민들 각자가 입은 피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에 불과했다. 피해회복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삶을 복구하는 동안, 두 발로 버티고 살아내는 건 오롯이 피해자들의 몫이 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하우스 농가에서는 반년 만에 마신 소주가 천 병이라고 했고, 그나마 월세방 세 들어 살다가 물난리를 겪은 이들은 건져낼 것도 없는 살림을 그냥 버려두고 구례를 떠나기도 했다.

한창 꽃 피는 4월 요즘, 집 근처 마을 주민들은 한켠에서 덤프트럭으로 흙을 실어 밭을 돋우는 작업에 한창이다. “집 지으실 거냐”고 묻자 아랫마을 할머니는, “큰물이 들었던 밭들은 땅이 제구실을 못 해서” 새 흙을 가져다 땅을 돋우어 주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땅에 퇴비를 얹고 갈아서 뭘 심어도 될 만한 흙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하게도 할머니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2년 전 물난리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도처에 이렇게 남아 존재감을 과시한다. 한쪽에서는 밭을 만드느라 분주한 반면, 다른 한편에선 봄철 꽃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곳곳에 붐빈다. 얼마 전엔 마을에서, 꽃을 보러왔는데 시골이라 안 좋은 냄새(퇴비)가 난다는 여행자들의 불평을 듣기도 했다. 여행하러 온 사람들이야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닌가 싶다. 이곳이 여기 사는 농민들에게는 일터고 농사가 밥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까지 알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철이 바뀌면 꽃도 피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재난 이후의 고통은 그저 당사자 혼자 묵묵히 감당해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게 어떤 것인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조차 그 깊이와 무게를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냥 아무 말 보태지 않고 음료수나 한 병 건네며 인사를 나눈다. 힘내시라는 말도 할 수 없으니 음료수라도.

 

신유정/ 한의사, 인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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