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전쟁은 멈춰있지만 체리꽃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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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전쟁은 멈춰있지만 체리꽃은 피어난다
  • 승인 2022.03.25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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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1917
감독: 샘 멘데스출연: 조지 맥카이, 딘-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앤드류 스캇, 리차드 매든 등
감독: 샘 멘데스
출연: 조지 맥카이, 딘-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앤드류 스캇, 리차드 매든 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무의미한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연히 전쟁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 당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쥔 것은 ‘기생충’이었지만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건 ‘1917’이었고, 이렇게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은 ‘아이리시맨’이었더랬다. 오늘 이야기 해보고자 하는 것은 ‘1917’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군 병사 블레이크는 아군 부대의 에린 무어 장군에게 공격중지명령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친구인 스코필드와 함께 길을 떠나는 것이 전부다.

이 영화는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 촬영기법으로 이슈가 됐었다. 엄밀히 말하면 정말로 2시간 동안 한 컷으로 진행된 건 아니고 중간에 은근슬쩍 몇 번 끊기는 하는데, 관객 입장에서 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카메라가 멈추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곤 한다. 이 독특한 촬영기법은 관객들에게 강한 몰입감과 독특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워낙 촬영기법이 강한 특색이다 보니 그 촬영기법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싱겁다는 반응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내 지인은 롱테이크를 원하면 게임에도 많이 있지 않느냐고도 했다. 어떤 의미로는 게임과 상당히 맞닿아있기는 하다. 이 영화는 ‘본다’기 보다는 ‘체험’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17’로 게임을 만든다고 상상해봤다. 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임이라고 하면 미션을 수행하면서 얻는 쾌감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데 이 이야기는 그게 없다. 일단 주인공, 일반 병사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아니라 그냥 총을 쏠 줄 알고, 명을 수행하겠다는 집념이 강한 일반 병사일 뿐이다. 전투장면? 중간중간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감과 박진감이 없지는 않지만 마이클 베이 영화처럼 쉴 새 없이 포탄이 터지고, 적벽대전처럼 수 백, 수천 명의 병사가 일제히 달려드는 화려함은 부족하다. 중간 미션? 이기자, 죽이자도 아니고 ‘살아남자’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최종 미션을 수행한 이후의 결말? 영화를 본다면 알겠지만 다른 전쟁영화들의 관전 요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 혹은 전쟁이 남겨준 잔인한 비극을 강조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차라리 군대에서 보여주는 안보 관련 교육영상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본래 전쟁이 그렇다. 바로 조금 전까지 함께 밥을 먹으면서 농담을 주고받던 동료가 1분 뒤에 맞은 총알 하나에 숨을 거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에 따라 다른 누군가의 피를 토하게 만드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서 봄은 오고 체리꽃은 피는데 알 길이 없다. 병사들은 총을 들고 공포에서 멈춰 있어야 한다. 영웅적이고 감동적일 이유가 없다.

영화 ‘1917’은 이러한 전쟁의 본질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대의명분도 없고, 큰 진전도 없이 서로 대치만을 반복하던 세계 1차 대전, 그 중에서도 이미 수년간 의미 없는 전투를 반복해왔지만 앞으로도 1년을 더 지속해야하는 1917년을 배경으로 한 것도 그런 의미이다. 더욱이 샘 멘데스 감독의 조부가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실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쟁터에 캡틴 아메리카는 없다. 모든 것을 평온하게 감싸안아주는 물줄기와 부러진 가지에서도 싹을 틔우는 체리꽃, 젖병을 빨며 살아보겠노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어린 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돌아가 보겠노라는 한 줄기 희망을 최대의 야망으로 지닌 병사를 뒤로할 뿐이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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