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창시자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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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창시자의 판타지
  • 승인 2022.0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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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46

스마트폰의 리더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아이폰(iPhone)이다. 애플은 혁신의 아이콘(icon)이기도 하여, 2007년에 첫 아이폰을 출시한 이래로 내놓는 제품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충성스런 고객을 거느리면서 스마트폰 분야에서 50%가 넘는 독보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혁신이란 이전의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리더는 혁신가이면서 키를 쥔 사람이다. 리더는 키(key)로 새로운 영역의 문을 열고, 키(舵)로 새롭게 다른 방향을 개척한다.

체질의학의 리더는 동무 이제마와 한반도의 사상의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무 공은 체질의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그리고 동무 공을 이은 동호 권도원 선생은 60년 후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여 체질침을 창안하고 8체질의학을 창시했다.

애플이 단번에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질서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첨단기술의 영역에서 혁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체질의학은 지극히 초라한 처지에서 출발했다. 19세기말의 조선은 국력이 기울대로 기울어 주변 열강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고, 어렵게 얻은 독립 후에는 양쪽으로 갈라져 치른 한국전쟁으로 사회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고 말았다. 19세기말 20세기 초중반의 한반도는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다. 그리고 이 땅에서조차 체질의학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한반도에서 인류 최초로 성립한 이제마와 권도원의 체질의학은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의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우리가 지금 이 혁신의 결실을 바로 보지는 못한다고 하여도 체질의학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장부방 체계

현재 8체질의학의 체질침에서 사용하는 장부방(臟腑方) 체계는 1992년말에 성립했다고 짐작한다. 권도원 선생이 체질침을 처음 고안한 것이 1958년말이므로 34년이 경과했던 것이다. 이 34년간 체질침의 체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래는 체질침 장부방 일람표이다.

변화

체질침의 기본적인 이론 체계는 1962년 9월 7일에 탈고한 「62 논문」에 대부분 담겼다. 그리고 1963년 10월이 되기 전에 첫 번째 중요한 변화를 거친다. 내장구조가 변경된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에 내장구조는 두 번째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1973년에 내장구조가 변한 증거는, 「2차 논문」에서 상대되는 체질의 자율신경조절방이 정반대인 것과 「명대 논문」의 국역문 각주에서 ‘체질 사이의 상관성과 유사성’을 설명한 부분이다.

하지만 권도원 선생은 8체질의 새로운 내장구조를 1973년 9월에 발표한 「2차 논문」에 반영하지 못한다. 내장구조가 변경된다는 것은 체질침의 장부방 체계도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체질침의 처방은 각 체질의 내장구조 안에서 장기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장구조가 두 번 변했다는 것은 체질침의 장부방 체계가 크게 두 번 변화했다는 의미다.

체질침의 병리에서 굳건한 이론적 바탕은 바로 병근(病根)이다. 8가지 다른 병근은 8체질론의 출발이기도 하다. 체질침의 기본방은 바로 이 병근을 조절하는 처방이었다. 그리고 이 원칙은 꽤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로 권도원 선생에게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짐작한다. 그러다가 1992년 초에는 병근 이론을 포기하려는 구상에까지 이른다. 그 배경에는 권도원 선생의 독특한 생명론인 화리(火理)와 그 연장인 8체질의학의 양음론(陽陰論)이 있다.

권도원 선생은 「2차 논문」에서, 부(腑)를 양(陽)으로 장(臟)을 음(陰)으로 보는 전통한의학의 관점을 뒤집었다. 그리고 숫자도 장(臟)에 양수(陽數)를 배속하였다. 더 나아가 음과 양은 동등하지 않고 음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은 단지 양이 모자란 상태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네 음체질(陰體質)의 기본방을, 병근을 조절하는 부방(腑方)이 아니라 해당 부(腑)와 표리관계에 있는 장방(臟方)으로 결정하게 된다.

음체질의 기본방을 장방으로 바꾼 것은 8체질에 개별성과 동등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 같다. 이렇게 하여 체질침 처방 체계는 장방 위주의 계통성을 가지면서 염증부방(炎症副方)은 장방으로 활력부방(活力副方)과 살균부방(殺菌副方)은 부방으로 정립되었다.

 

M방

 체질침에서는 각 체질의 내장구조에서 중간에 위치하는 장기 즉 중간장기는 자극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방체계에서 중간장기에 해당하는 장부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John Baik이 보관했던 자료 중에서, 중간장기를 적용한 처방을 M과 M'이라고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M방이 들어간 처방이 사용된 시기가 1992년말을 기준으로 앞인지 뒤인지 지금으로서는 특정하기가 어렵고, 권도원 선생이 실제로 이런 고민과 실험을 직접 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이 자료가 수록된 한글파일은 John Baik의 컴퓨터에 있었지만 자료의 첫 생산자가 John Baik은 아닐 거라고 판단된다. 아마도, 권도원 선생이 아꼈던 제자라고 전해지고 있는 Dr. Lage U. Kim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이명복 선생은 1991년에 도미하여 아이다호에 있던 Dr. Lage U. Kim을 만났다. 그리고 체질침 처방과 관련하여 개인지도를 받았다. John Baik은 1993년 11월에 UBF 선교사로 캘리포니아주 남부인 롱비치(Long Beach)에 파송되었다. Dr. Lage U. Kim과 John Baik이 직접 만난 적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John Baik의 자료는 조재의를 통해서 국내에 알려졌다.

 

고민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권도원 선생의 진료실에서 금양체질과 목양체질의 신경방과 토음체질과 수음체질의 신경방을 맞교한하여 사용해 본 시도가 있었다. 즉 운용하는 오행 속성을 토와 수를 금과 목으로, 금과 목을 토와 수로 바꾸었던 것인데 일정기간 운용하다가 원상태로 복귀하였다. 이런 사실은 제선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을 통해서 나온 처방 정보를 분석했던 한의사들에 의해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이후에 두 체질의 처방 내용을 수정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금양체질과 목양체질, 토음체질과 수음체질의 고단방 운용에서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들이 누적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체질침 처방체계가 변화해 온 역사는 가장 효율적인 자극의 순서를 찾아내려는 연속적인 실험과 노력의 과정이었다. 권도원 선생이 1958년말에 체질침을 고안한 이후에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다. ‘1992년말이라는 시기’는 권도원 선생이 관장하고 활동하는 영역 밖에서 내가 혼자 설정한 것이지, 그 분 자신에게는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창시자인 리더는 쉬지 않고 고민하며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었던 체계를 언제든지 파기할 수가 있다.

 

겉멋

공부의 진전은 보통은 계단식인 것 같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도약하는 시기들이 있다. 도약하는 높이와 수준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런데 아무리 도약하려는 계단의 높이가 낮다고 해도 스스로 딛고 올라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거대한 벽으로 느껴질 것이다.

체질이 정말 있기는 한 건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맥진이 제대로 안 되어 체질감별에 실패할 때, 8체질의학적인 개념이 영 익숙해지지 않고 다른 생각만 자꾸 떠오를 때 좌절을 겪는다. 이런 건 초보적인 어려움인데 사람들은 이런 정도에서 많이 포기하고 만다.

오히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될 때가 위험하다. 자만하게 되고 이 체계를 만만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권도원 선생이 이걸 만들었으니 내가 다른 걸 못 만들 일은 없겠지’ 하면서 엇길로 빠진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지금의 장부방 체계가, 자화와 상화 조절방 체계가, 자침의 순서나 처방의 내용이 확실한가 하면서, 권도원 선생이 평생을 바쳐서 했던 고민과 의심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못 된 겉멋이다. 시간과 정력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일이다. 물론 모든 창시자에게는 판타지(fantasy)가 있다. 의심하고 궁리하려거든 창시자에게서 부족한 이런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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