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14) 다 계획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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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14) 다 계획이 있었구나
  • 승인 2022.02.1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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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어느 날 갑자기 원치 않는 일이 찾아올 때가 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일의 당사자가 되어 갑자기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지나가야 할 때, 우리는 괴롭다. ‘왜 일어났지?’ ‘왜 하필 나야?’ 이런 생각이 쉴 새 없이 떠오른다. 저항하며 오랫동안 괴로워하거나, 빨리 받아들여서 해결책을 찾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머리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가슴이 그러지 못하는, 그럴 때가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중국 만리장성의 변방에 살던 ‘새옹’이라는 노인의 말(馬)에 관한 이야기다. 널리 알려졌지만 잠시 요약해보자면 노인의 말이 달아났는데 뛰어난 말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고, 그 말을 타다가 아들이 떨어져서 다리가 부려졌는데 그 덕에 전쟁에 끌려가지 않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원치 않는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 마다 ‘새옹’이라는 노인이 했던 말이 있다. “이 일이 좋은 일이 될지 화(禍)가 될지 누가 알겠소.”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한 대단한 노인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러기 쉽지 않다. 그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더 나쁜 상황에 이르거나 경거망동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일이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는 나중에 판단하자는 ‘새옹’ 노인의 말씀이 원치 않는 일과 만날 때 자주 생각난다

2021년 가장 뜨거웠던 스포츠 스타, 배구선수 김연경은 현재 192cm의 장신이지만 어릴 때는 아주 작았다. 그래서 키 큰 선수들이 주로 맡는 포지션이 아닌 단신 선수의 포지션들을 골고루 경험했다. 장신 선수들이 키를 이용한 배구에만 의존할 때,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면서 장신선수들은 가지기 어려운 다양한 테크닉과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 작은 키는 한 때 자신의 콤플렉스였지만 그 시절 덕분에 지금의 김연경이 존재할 수 있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많은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이 자신의 분야에만 몰입하는 대신 사소한 은행업무나 귀찮은 일들을 지인이나 매니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가 재산을 날리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부유한 부모아래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 역시 생계의 어려움을 모르고 살다가 그것이 나중에 발목을 잡기도 한다. 갑자기 어려워져 직접 생계를 해결해야 할 때, 기초적인 경제상식과 서민생활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구 선수의 작은 키, 귀찮은 일을 해결해주는 매니저, 든든한 경제적 지원군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새옹 노인의 이야기처럼 쉽게 단정 짓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시간에 매몰되어 있지만 먼 미래로 가서 지금을 바라본다면 현재 느끼는 것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지금은 힘든 일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을 수 있고, 지금 지루한 일상이 지나고 보면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지금 당장 해고당하는 고통은 더 나은 직장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지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것은 큰 부자가 되는 경제공부의 시간일 수 있다. 단순 반복되는 봉직의 업무는 개원의로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시간일수 있고, 힘든 시기를 지날 때 만난 인연이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우주에는 다 계획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어떤 고난을 겪는다 해도 그건 다 계획의 일부고 그 경험이 내 인생 어딘가에 쓰임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이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 그저 쓸모없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어디에 속할지는 자유다. 다만 내 인생의 저 뒤 어딘가에서 지금의 경험이 꼭 필요한 곳이 있을 거라 믿으며 살면 고통스런 순간을 지나기가 수월해짐은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어떻게든 지나왔다. 그 순간을 견디고 버티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곳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격려 받고 위로 받을만한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곳까지 왔다. 지금 어떤 일이 앞을 가로막고 괴로움을 준다 해도 그건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격증을 주기 위한 수련(修練)일 수 있다. 지나고 난 뒤 돌아보면 과거의 경험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아 이때의 일이 이렇게 쓰이게 됐구나. 아 그때 저런 일이 있었던 건 다음에 이런 상황에 쓰이려고 일어난 거였구나.’ 깨닫는 날이 분명 오리라 믿는다. 밀란 쿤데라도 나와 생각이 같았나 보다. 그의 글 <우스운 사랑들>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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