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 8체질]체질침 논문
상태바
[이강재의 임상 8체질]체질침 논문
  • 승인 2022.02.12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45)

동호(東湖) 권도원 선생의 체질침(Constitution-Acupuncture) 논문은 모두 네 편이 있다. 그리고 이필자의 논문에 체질침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1)

 

62 논문

권도원 선생이 자신의 눈병을 스스로 치료하게 된 계기로 체질침을 고안한 것이 1958년 말에서 1959년 초라고 추정한다. 자신이 만든 체계에 대한 기대감이 동무 이제마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1959426일자 동아일보에, 사상의학회 부회장 권항전(權巷全)이라는 이름으로 기고한 사상의학의 창시자에 잘 표현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그는 동무 공의 업적을 칭송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획기적인 체질침의 창안이라는 자부심이 충만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권도원 선생은 노정우 선생의 도움을 받아 19624월에 한의사가 된다. 그리고 국제적인 학술대회가 중화민국 타이베이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것은 오혜평(吳惠平)이 주재하던 중화민국침구학회가 1962106일부터 3일간 개최했던 제12차 국제침술학회이다. 대회 주최측으로부터 미리 참가 승인을 받았고 196297일에 논문을 탈고한다. 그리고 928일에 서울시한의사회가 주최한 한의학연구발표회2)를 통해 사전발표도 하였다. 하지만 여권 수속 문제가 얽혀서 권도원 선생은 타이베이에 가지 못했고 국제침술학회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못했다.

나는 학습 8체질의학에서 이 논문을 62 논문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3) 이 논문은 영문으로 작성되었고, 체질침의 성립과 운용에 관한 기본적인 원리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섯 가지의 임상례를 실었다.

 

1차 논문

타이베이에서 열렸던 제12차 국제침술학회에 참석하지 못한 권도원 선생은, 19655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제13차 국제침술학회 준비위원회로 315일이었던 제출기한에 맞춰 체질침 논문을 보냈다. 그런데 이때는 국내의 외환사정 때문에 출국 직전에 참석이 불발되었다. 의림의 발행인이던 배원식 선생은 196410월에 친지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가서 1014일부터 1110일까지 머문다. 이 기간에, 일본침구치료학회(日本鍼灸治療學會)의 이사장이면서 국제침구학회(國際鍼灸學會)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키노시타 하루토(木下晴都)를 만나게 된다. 키노시타로부터 북한의 김봉한에게만 초청장을 보냈다는 말을 들은 배원식 선생은 강력하게 항의했고 한국의 침구학자들도 초청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낸다.

귀국한 배원식 선생은 의림46호를 통해서 국제침구학회 참가 신청 공고를 낸다. 공고문에 의하면 200자 이내의 강연초록을 1965331일까지, 논문의 전문 원고는 531일까지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권도원 선생은 의림사(醫林社)를 통해서 일본에 논문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국제침술학회 조직위원회가 접수한 논문에 명기된 주소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26번지로 이곳은 배원식한의원이 있던 의림사의 주소이다. 그러니까 권도원 선생은 오스트리아 빈과 일본 도쿄 두 곳에 모두 논문을 보냈던 셈이다. 오스트리아 학술대회는 부산삼세외과의원 원장이던 송태석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도쿄에 논문을 보내고 권도원 선생은 출국 신청을 위해서 일본에서 온 초청장을 들고 외무부에 갔다. 그런데 당시의 외무부 담당자는 소속된 학회의 승인을 먼저 받아오라면서 돌려보냈다. 권도원 선생은 대한한의학회로 찾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한의학회 회장이던 홍순용 선생이 제동을 건다. 논문의 내용에 대해 학회 차원의 공식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도원 선생은 196559일에 대한한의학회와 서울특별시한의사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1회 종합학술강좌에서, 체질침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으로 한의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공개 발표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6568일에는 하계임상강좌로 체질침의 실기를 실연하였다. 또 경기도한의사회의 요청을 받아서 수원(6/16)과 인천(6/18)에서 체질침의 이론과 임상이라는 주제로 순회강좌에 참가하였다.

국제적인 학술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자 했던 한의계 인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한한의학회로서도 명분을 위해서 이런 공식적인 절차를 통한 검증이 필요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러 절차와 우여곡절을 거쳐 권도원 선생은, 두 번의 실패를 딛고 드디어 대망에 그리던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19651018일부터 20일까지 일본침구사회4) 주최로 일본 도쿄의 동경문화회관에서 열린 국제침구학회에, 대한한의사협회는 배원식, 진태준, 권도원을 대표단으로 파견했다. 대한한의사협회로서는 첫 해외 학술대회 진출이었다.

권도원 선생은 1020일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외국인 초대강좌에서 두 번째 순서로 자신의 체질침 논문을 구두(口頭)로 발표하였다. 권도원 선생은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어떤 연유인지, 논문 발표 때 도표를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슬라이드를 짐에서 빠뜨리고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 영문으로 작성한 발표용 원고를 보고 읽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체질침의 논문으로는 국제학술대회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한 것이어서, 도쿄에서 발표한 이 논문을 ‘1차 논문(the first paper)'이라고 부른다.5) 학술대회를 주최한 일본침구치료학회는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모아서, 국제침구학회지19666월에 의도의 일본사(醫道日本社)를 통해서 발행한다. 1차 논문에서는 생리와 병리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8개 병형(病型)을 치료하는 8가지의 치료처방과 8병형의 맥상(脈相)이 제시되었다.

 

2차 논문

이 논문은 Studies on Constitution - Acupuncture Therapy1차 논문에 이어서 발표된 것이라는 의미로 2차 논문이라고 부른다. 中央醫學19739월호에 영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뒤에 국문초록(國文抄錄)이 한 페이지 첨부되어 있다.

사상의학적인 내용이나 동무 이제마와 연관된 언급이 전혀 없고, ‘8체질론(the theory of 8 constitutions)’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였으며 시종일관 8체질론의 원리로서 진행하였다. 8체질의 독창적인 체질명 제시, 장부와 경락, 장부혈의 부호 개정, 쉽게 만든 새로운 체질맥도, 반자동식 자침 기구, 8체질의 장방(場方)과 부방(副方)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여섯 가지의 증례를 보고하였는데, 논문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치료에 중점을 두면서 체질침 처방보다 증례를 앞쪽에 배치하였다. 부호체계에서 음양을 바꾼 것은 기존 동양학이나 전통한의학의 체계를 전면적으로 전복(顚覆)한 것이다.

2차 논문으로 체질침은 체계적인 장방의 개념을 갖게 된다. 이 장방들 중에서 최강기능을 가진 장방을 기본방으로 하고, 나머지 장방을 배합하여 치료처방을 성립시켰다. 그래서 기본방과 부방이 배합되어 각각 다른 치료의 목표가 설정되는 계통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8체질에 각각 사용할 수 있는 장계염증방, 부계염증방, 활력방, 살균방, 정신방 등이 만들어졌다. 체질침 처방의 구조에 관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 논문의 내용이 끝이다.

 

명대 논문

이 논문은 19739월에 中央醫學에 발표한 2차 논문의 내용에 ‘8체질이론에 기초한 음식분류법을 추가하여, 197411일에 발행한 明大論文集7집에 실은 것이다. 영문(英文)과 국역(國譯文)을 차례로 수록하였다. 2차 논문의 내용 중에서 도표와 그림의 번호를 수정하여 독자적인 연번호(連番號)를 설정하였다.

8체질론에 기초한 음식 분류를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명대 논문이전에 음식과 섭생표가 책을 통해서 소개된 것은 1967년에 염태환 선생이 행림서원에서 펴낸 동의사상처방집이다.

 

영양학회 논문

이 논문은 이필자의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석사학위 논문이다. 이것을 1985년에 한국영양학회지에 실었다. 그래서 영양학회 논문이라고 부른다. 이 논문이 체질침과 관련한 논문이 된 이유는, 이 연구에 권도원 선생이 참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논문을 통해서 확정된 8체질의 내장구조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필자의 원래 논문으로 하지 않고 한국영양학회지에 실린 논문으로 기준을 삼은 것은 이필자의 원 논문에 수록된 표에 중대한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이 표가 한국영양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는 수정되었으므로 이 논문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 논문의 내용 중에서 8체질의학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Fig. 1Table 1이다. Fig. 18체질 그룹에서 연관된 장기 기능(Relative organ function in 8 constitutional groups)으로, 8체질 각각의 내장구조(장기 강약서열)를 나타낸 그림이다. 8체질의 내장구조는 8체질의학의 역사에서 모두 두 번 변경되었는데, 이 논문을 통해 보고한 이후에는 변경되지 않았다. 사실 두 번째 변경에 대한 단서는 명대 논문의 국역문에 있다. 그래서 나는, 권도원 선생은 이미 1973년에 두 번째 내장구조 변경에 대한 결정을 했다고 짐작한다. 그 이후에 이것을 밝힐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이필자의 논문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양학회 논문은 권도원 선생과 도올 김용옥의 인연을 바탕으로 성사된 것이다. 이 논문의 서론은 김용옥의 강의내용을 따온 것이다. 8체질론과 영양학이 어떤 지점에서 만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다. 이필자를 지도한 김숙희 교수는 김용옥의 누이이다. 김숙희 교수는 금음체질인데 체질식을 한 이후에 오래도록 고생하던 불편함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고, 체질식이 어떤 변화를 나타내는지 연구해 보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체질별로 분류된 유익한 식품과 해로운 식품에 따라서 유익한 방향으로 식생활을 할 경우, 혈청내 성분들이 비교적 유익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1) 이필자, 체질의학의 체질분류법에 따른 식품기호도와 영양상태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한국영양학회지18권 제21985. p.155~166

2)오후 6시부터 서울시민회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3)이강재, 학습 8체질의학행림서원 2009. 11. 20. p.154~163

4)당시 회장은 오카베 소도(岡部素道)였고, 국제침구학회의 대회장을 맡았다.

5)Dowon Kuan, Studies on Constitution-Acupuncture Therapy」 『中央醫學1973. 9. p.327

Since the first paper, entitled “A Study of Constitution-Acupuncture” in which its general theoretical system was reported at the 1st World Congress of Acupuncture, held in Tokyo, Japan in October 1965. (번역) 196510월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침구학회에서 체질침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개략적인 이론체계를 보고한 1차 논문 이래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