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위험이 닥쳐도 걱정할 것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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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위험이 닥쳐도 걱정할 것 없어요
  • 승인 2022.01.21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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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mjmedi@mjmedi.com


도서비평| 위험이 닥쳐도 걱정할 것 없어요, 다미주 이론

노루는 빨리 도망치는 법을 안다. 태어난 지 이삼일이면 빨리 달리 수 있다. 초식동물로서는 빨리 도망치는 것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등에는 파리이지만 말벌처럼 생겼다. 위협을 받으면 벌침이 없어도 말벌 흉내를 내어 천적을 쫓아버린다. 무당벌레는 누가 건드리면 등딱지 속에 머리를 감추고 죽은 척 하며 꼼짝 않고 있다가 찰나에 날개를 꺼내어 훌쩍 날아간다.

채인선 지음, 황보순희 그림, 한울림어린이 출간

몸을 부풀려서 크게 보이게 하는 복어, 독한 냄새를 풍기는 스컹크, 가시털을 세워서 경계하는 고슴도치, 남의 눈에 안 띄게 살아가는 곤충들.

생물들의 이런 본능적인 행동은 각각 그 생물의 약점을 보안하며 위험을 피해 살아갈 수 있는 독특한 생존 방식이다.

생명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그 생명들이 타고 태어난 대로 살아 갈 수 있는 자연의 현명함이 느껴지는 내재된 생존 방식인 것이다.

동화책이지만,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이런 비슷한 패턴의 생존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오른 건 인류의 진화론적인 숙명 때문이었을까?

다미주 이론은 스티븐 포지스 박사가 비교해부학과 진화생물학 연구를 통해 인간의 자율신경에 대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이다. 자율신경의 활동을 단순히 교감-부교감신경의 길항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10번 뇌신경인 미주신경을 통해 계통발생적인 위치체계(Phylogenetically ordered hierarchy)를 가지고 있다고 밝혀냈고, 이는 환경에 따른 자율신경의 다양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분야에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던 얼어붙기 반응에 대해 설명이 가능해짐으로써, 트라우마 내담자들의 반응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반응임을 알게 되는 그런 획기적인 관점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스티븐 W 포지스 지음, 노경선 옮김, 위즈덤하우스 출간
스티븐 W 포지스 지음,
노경선 옮김, 위즈덤하우스 출간

위협을 감지하는 것은 신경지(Neuroception)이라고 불리는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작동하는데, 신경지가 감지하는 것에 따라 우리 몸은 세 가지 상태 중 하나의 방어체계를 쓰게 된다. 안전을 감지하면 유수미주신경인 배쪽 미주신경이 작동되어 얼굴과 청각주변 근육을 조절하여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져 타인과 연결될 수 있고 건강과 성장, 회복을 이끌어준다. 위험을 감지하면 교감신경계가 작동하여 호흡, 심박동을 빠르게 하고 혈액을 골격근에 공급해서 도망하거나 싸울 수 있게 가동화를 촉진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위험이나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게 되면 가장 오래된 수초화되어있지 않은 등 쪽 미주신경이 작동하여 얼어붙거나 기절하거나 몸과 마음을 셧다운시켜 부동화상태를 만든다.

트라우마와 만성스트레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감지시스템 작동에 오류가 생겨 안전을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쇠약해지고,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를 조절하기 위한 알콜, 마약, 폭식 등 다른 위해한 행동양식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이 의식적인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신경계가 그 순간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을 알게 되면 병리적으로 보았던 부분들을 것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되고, 우리 생존을 위해 신경계가 선택한 반응에 감사하게 된다. 또한 생존상태에서 벗어나 안전과 건강의 상태로 가는 배 쪽 미주신경으로 오기 위해 대인관계의 상호조절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적인지 알 수 있고, 이는 의료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 복지, 사회 전체와 삶 속에서 안전감이라는 것이 성장과 회복의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라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미주 이론은 신체와 뇌, 그리고 신체와 심리적 과정 사이에 신경생물학적인 연결고리를 제공하며, 이의 관점에서 보는 치료모델은 셧다운의 역치를 변화시켜 좀 더 사회적으로 참여하여 연결할 수 있고, 생리적인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다미주 관점에서 보면, 위험이 닥쳐도 걱정할 것 없겠다.

우리의 신경계는 본능적으로 그 순간 가장 생존에 유리한 대로 작동을 할 것이고, 우리는 생존할 것이고,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으니깐.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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